|마른 땅에 단비를| 바람 불어 좋은 날_이야고보

0
127

마른 땅에 단비를 

바람 불어 좋은 날  

< 이야고보, T국 일꾼 >

 

바람 부는 날이면 바울이 걸었던 드로아아소 길을 기억한다.

동료 선교사들을 보내고 홀로 걸으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처음 선교지를 향해 떠나던 1995, 교회 앞에서 두 살 반, 오 개월 반 된 두 아이를 안고 우리 부부가 했던 인사말이 떠오릅니다. “저희는 잊히기 위해 떠나갑니다.” 21년이 넘은 지금 아내와 함께 그때 왜 그런 말을 했는지를 이야기하면서 웃곤 합니다. 잊힌다는 것의 의미를 선교지에 도착한 후에 비로소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 잊힘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고국을 방문할 때면 늘 그 자리에서 우리 가족을 따뜻하게 맞아 주신 교회와 교우들, 친지와 벗들의 손길을 통해 잊힌 존재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의 기도 속에 우리의 자리가 있었던 겁니다. 이제 우리 부부는 잊힘의 비밀을 배워 나가는 선교사의 삶이 너무 행복해서, 이 은밀한 영적 기쁨을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746-5_1.jpg

746-5_2.jpg 

   저희가 사역하는 이곳은 초대 교회의 땅입니다. 바울과 동역자들, 파송 교회와 후원 교회들, 선교사들과 현지인 일꾼들이 함께 일궈낸 초대 교회의 선교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소아시아 땅입니다. 이 선교 현장에서 바울은 바울대로, 로마 제국의 핍박 아래 교회는 교회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몸에 채워야 했던 험한 시대. 그러나 그 시대의 광풍조차 삼키지 못한 교회의 선교. 그 무엇으로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 낼 수 없음을 증명하신 성령의 선교. 1, 2차 세계 대전 속에서도 결코 단절된 적이 없었던 하나님의 선교. 그 세계 선교의 행진이 지금도 한국 교회를 통해서 계속되고 있음은 은혜 중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인구의 99.8퍼센트가 무슬림인 이 나라에서 주님을 섬기며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더 없이 큰 특권입니다.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거친 영적 상황으로 인해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육체적인 고단함이나 관계의 갈등, 사역적 어려움으로 인해 지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저희 가정에 몇 차례 큰 바람이 분 적이 있습니다. 여러 해 전 성탄절 전날 현지인 의사로부터 암 선고를 받은 아내를 급히 국내로 후송한 후 병실에서 밤을 새워야 했던 시간. 돌아가서 현지인들을 다시 한 번 더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기도했을 때 그 응답으로 아내를 살려 주신 하나님. 그래서 망설임없이 선교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시간. 다시 한 번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드렸는지요. 동역자 부부와 현지인 가정 사이의 오해로 인해 공동체가 벼랑 끝에 섰던 두 번째 교회 개척 시기. 끝내 화해하지 못한 채 동역자들도 현지인 신자들도 떠나가 버린 그 빈자리에 남겨진 우리 부부. 눈물 골짜기를 지나면서 다시 회복된 관계. 다시 한 번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신 주님의 이름을 얼마나 찬양했는지요.

   물론 지금도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날을 바람 불어 좋은 날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위기와 갈등에 직면할 때면 바람 불어 좋은 날이라 노래하려고 애썼고, 그 결과로 이전보다는 좀 더 빨리 여유를 되찾는 습관이 제법 몸에 밴 것 같습니다. 그러나 노래하기에는 강도가 너무 센 폭풍의 언덕에 설 때면 여전히 어려워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바람 부는 날이면 바울이 걸었던 드로아아소 길을 기억합니다. 선교 여행 후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던 중 동료 선교사들을 배편으로 보내고 홀로 아소까지 걸어간 그 한적한 시골길… 그는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저는 그 답을 디모데후서 416-17절에서 찾습니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디모데후서가 기록된 연대가 바울이 로마에서 다시 투옥된 A.D 66-67년이라면, 바울은 드로아에서 아소까지 걸었던 시골길에서 장차 복음의 영광을 위해 받게 될 고난을 감당할 수 있도록 밤새 기도한 것 같습니다. 바울의 생애에서 이 드로아아소 길이 없었다면, 디모데후서 416-17절의 위대한 고백도 없었을 겁니다.

   지난 몇 년 간 한국 사회와 선교 현장이 겪어온 고난이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가족임을 기억케 하는 몸의 흔적이 되길 소망합니다. 본국에서도 선교 현장에서도 끊임없이 우리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열매들이 익기도 전에 땅에 떨어지기도 하나, 그 스트레스는 나무와 열매들을 더 튼실하게도 합니다. 그러니 이제 함께 바람 부는 언덕에 서서 노래합시다. 노래할 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성도들의 삶은 새 힘을 얻고,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역사로 세워질 것으로 믿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