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의 ‘칭의’ 논쟁을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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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칭의’ 논쟁을 우려한다

 

   아쉽지만 그동안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구원론과 칭의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왜곡된 구원론과 칭의론을 가르쳐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 결과 복음이 실종되었고 참된 복음에 기초한 그리스도인의 윤리가 실종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적인 은혜의 교리는 값싼 은혜로 변질되었고 ‘오직 믿음’은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잘못된 칭의 이해가 종교개혁의 구원론과 칭의론 자체를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교회가 잘못 받아들이고 이해한 구원론과 칭의론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개혁의 구원론과 칭의론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칼뱅은 칭의를 그리스도인의 경건을 위한 참된 기초로 여겼다.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 곧 성화는 바로 율법 외에 또 다른 하나님의 한 의, 곧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기초한다고 밝혔다. 오직 예수 그리스

 

   도로 말미암아 은혜로 전가된 의, 이것이야 말로 그리스도인의 참된 윤리의 기초인 것이다.

참된 경건은 참된 믿음에 기초하며 우리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구속의 사랑과 구원에 대한 감사에 근거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칼뱅을 비롯한 종교개혁의 칭의론이 마치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삶’을 무시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오히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칭의 논쟁은 윤리실종의 한국교회에 그리스도인의 윤리를 강조하다가 복음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 한 분만이 우리 구원의 유일한 기초인데 여기에 인간의 선행을 섞으려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한국교회가 붙들어야 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다. 한국교회는 바른 복음에 대한 이해 없이 마치 면죄부식의 값싼 복음을 가르쳐왔었다. 바로 여기에 소위 ‘구원파식의 구원 이해’가 자리하고 있다. 참된 복음이 없으니 참된 생명의 역사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 자리에는 이기적인 현세적 자기만족을 위한 기복신앙, 번영신학이 자리할 뿐이다.

   칭의론 논쟁 이전에 복음에 대한 바른 선포가 우선되어야 한다. 개혁자들이 전수하여 준 바른 복음, 그 바른 복음의 선포만이 새 생명의 역사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거듭남의 역사가 없이, 곧 회심케 하는 역사가 없이 어떻게 성도의 거룩한 삶이 가능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