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 드리는 주기도문 |저자 : 채영삼 교수(이레서원)|
< 민현필 목사, 중동교회 교육담당 >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십자가 앞으로 인도해 내는 일상 속의 제사장”
2016년 가을은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만추의 기쁨을 즐길 여유도 없이 정말 스산하게 지나갔다. 우리가 그토록 신뢰하고 믿었던 정치, 종교계의 지도자들의 몰락에 관한 소식들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애잔하다 못해 무너지는 심정이다.
밀당하듯 벌어지는 정치권과 광장의 소식들을 전하는 특종 보도들과 기사들이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더라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려온다. 어느새 우리는 ‘막장 드라마’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던 중 문득 마음 한켠에 스쳐 지나가는 기도가 있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 기도를 떠올리면서 마음 속 깊은 곳에 언제부턴가 자리잡기 시작한 아득한 절망감의 실체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 절망감은 이내 ‘아버지의 나라’를 향한 열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옷깃을 여미는 겨울의 초입에 이 기도를 떠올린 사람이 필자만은 아니었으리라.
<삶으로 드리는 주기도문>은 비록 2014년에 출간된 책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더 한국교회를 향해 시의성 있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이 책이 기존의 주기도문 강해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비교적 최근까지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사회적인 이슈들이나 교계 내부의 아픔들에 대한 고뇌에 찬 반성과 성찰들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저자만의 성경신학적 프리즘을 통해 주기도문(Lord’s prayer) 속에 담긴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아름답게 펼쳐내고 있다.
6개의 청원으로 이루어진 주기도문(Lord’s prayer)을 해설하면서 저자는 시종일관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에 주목한다. 특히, 저자는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더럽히면 그 더럽혀진 복음이 다시 교회를 더럽히고, 그렇게 더럽혀진 교회는 또다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는’ 악순환을 반복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행복이 우상이 되고, 엔터테인먼트가 종교가 된 소비주의화된 현대사회 속에서 인간의 욕망은 극대화되고, 복음의 신앙마저도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마땅히 사랑해야 할 하나님은 수단이 되고, 물질은 숭배의 대상이 되어 버린 현실에 대해 저자는 개탄한다. 이 인간의 욕망과 맘몬숭배야말로 복음을 더럽힌 주요한 원인임을 저자는 지적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자는 우리에게 ‘그렇다면 신앙이란 무엇인가?’ ‘복음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제기한다.
저자에 의하면 ‘신앙이란 외면하고 버리고 싶은 이 현실을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과 함께 그 현실과 세상 한복판, 악의 한복판을 뚫고 지나가는 것이다. 죽음을 뚫고 부활에 이르는 것이며, 악을 뚫고 의와 평강이 거하는 새 하늘, 새 땅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구원 받는다는 것은 악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악을 하나님의 선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십자가의 은혜와 진리로, 하늘의 능력으로 뚫고 지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현실을 피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내 가족, 내 교회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신앙에 대한 일침이다.
그렇다면 복음이란 무엇인가? ‘예수 믿고 복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고 예수 받는 것‘이 복음이다. 예수 믿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고 그것을 누리고 다스리고 섬기며, 그 나라의 완성을 대망하는 ’산 소망‘(living hope)을 누리며 사는 것이 복음인 것이다.
’썩어지고 더럽고 허무한 세상‘에 대하여 내가 죽고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 영원한 생명의 통치 아래 들어가는 것,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분과 함께 부활 생명을 지금도 누리며 장차 몸의 부활까지 받을 소망으로 사는 것, 날마다 속 사람이 그분의 형상대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 바로 복음임을 저자는 역설한다.
이렇게 하나님 중심적인, 하나님 나라 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회복할 때 성도들은 이 땅에서 ’단순한 삶‘을 살 수 있 다. 이것이 주기도문 후반부의 3개의 청원에 나타난 주님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교회가 세상과의 ‘경건의 거리’를 두면서도 이웃을 향한 ‘의리’를 지킬 줄 아는 ‘일상 속의 제사장’들로 살아가야 함을 강조한다. 악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정복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거듭난 심령의 회복된 양심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 사람들을 십자가 앞으로 인도해 내는 일상 속의 제사장!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길, 제사장의 길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적 상황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가 처했던 상황만큼이나 암울하다. 혹자는 이 모든 상황에 대한 책임이 한국교회에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는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들 앞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비록 그것이 피상적인 인상비평 정도의 수준일지라도, 더 중요한 것은 이사야처럼 ‘온 땅에 충만하신 여호와의 영광’과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주권적인 통치’의 현실을 다시금 자각하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일상의 제사장’들로 헌신하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