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순(耳順)을 꿈꾸다
고숙경 집사, 열린교회
“오십의 산들바람 곁에서 이제는 두근거리는 육순 소녀의 꿈꾸고 있어”
여자나이 사십대를 상상하기조차 난감해하던 때가 있었다. 여자라는 카테고리는 젊음, 아름다움, 신비로움 등 극히 주관적인 개념으로 둘러싸여져 있어 왔다. 나이 어린 시절에 막연히 사십이 저 먼 얘기 같았으니 여자나이 사십 이후가 마치 내게는 예외적인 무엇이거나 아예 상상하기 싫었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런데 먼 일이었다고 생각조차 않던 나에게 사십대가 불현 듯 찾아왔다. 사람들 관심의 중심에서 멀어지고 생물학적 기능과도 작별을 고해야하며 소외와 쇠락함의 실루엣과 만나야하는 낙화 같은 모습이랄까? 무언가 표현하기 쉽지 않은 상실을 직면하는 나이가 찾아 온 것이다.
하지만 시어머님께서 이십대의 며느리에게 “나이 칠십이 네 옆에 있느니라”고 하시는 말씀 앞에서 내 나이 사십대는 더 이상 크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철부지 며느리로서 그 뜻을 알아내기가 불가하였고, 그 진중한 뜻은커녕 어머니는 어찌 저런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조차 하지 못했다. 젊은 내가 알아듣지도 못하고 그 말씀 자체만으로도 지레 늙어버리는 듯하였다.
말이란 영향력이 있는지라 나는 늙음 앞에 지레 고개 숙인 애늙은이였을지도 모른다. 예쁜 살림살이라든가 뭔가 자리 차지하고 오래오래 써야하는 물건들에 대한 흥미도 없었다. 백화점에서 사은품으로 주는 품목을 고를 때도 쓰고 없어지는 걸로 택했고, 명품이라든가 밍크털옷이라든가 이런 것도 허무했다.
한 때의 젊음인데 오히려 더 즐기고 밝히고 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반대쪽에 있었다. 지금 생각하건데 오히려 나의 기질적인 소인도 한 몫을 했으리라 여긴다. 부모 슬하에서 공부하고 남편 잘 만나 시집가서 자식 낳고 잘 키우고 그 집 사람 노릇하라는 사회화를 내면화한 우리 세대 여자의 일생은 그게 미덕이었다.
나 역시 고3 담임 선생님의 백퍼센트 결정으로 대학을 갔고, 조신하게 있다 시집가서 살아야 한다는 암묵의 짓눌림에 저항 한 번 못해보고 기도 열심히 한 응답이라고 믿고 결혼하여 이제껏 살아오고 있다.
누군들 선한 선택을 하지 악한 선택을 하랴만 시각의 한계, 사고의 부자유함, 사회적 전통과 관습 등 이러한 내외부적 제한으로 택해진 사안들의 불안정성은 이루다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폭탄도 터지고 쓰나미도 만나고 총칼 들고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서 그렇지 사람 사는 세상인데 사람이 차마 다 겪지 못할 일들을 보고 듣고 그러면서 살아내고 있다. 이런 차에 사람만큼 존귀하며 사람만큼 내버려진 존재가 또 있을까 싶다.
그렇지만 사람은 선택이라 말하나 하나님은 섭리자이시고, 사람은 나이 먹음의 마이너스를 말하지만 하나님은 장년자와 노년자의 아름다움을 깨우쳐주신다. 이래서 참 좋다.
사소한 감정에 휘둘리는 풋내가 좀 덜해지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먼저 길을 알려주고, 역지사지도 할 수 있게 되고, 새옹지마에 끄덕이고, 피부의 탄력과 선은 변했지만 지난 세월의 흔적이 솔직히 드러나서 편하고, 앞으로 남을 흔적에 소망을 두고, 관계가 어떻든 예의를 갖추되 허세나 척은 하지 않을 정도의 자유로움도 알았다.
사실, 여자는 생물학적 여자로서 아름다운 게 아니고 좋은 여자가 되어가며 그 아름다움의 심연을 걷게 된다. 그 향기는 나이의 다소에 있지 않고 내면적 인품의 성숙과 겸손과 지혜로움에 기원한다. 그래서 억지로 꾸민 아름다움은 공포스러울 따름이다.
팔순의 연세에 아름다우신 분도 보았고, 겹겹이 진 주름의 향이 만져보고 싶을 만큼 맛난 분도 본다. 아쉬운 건 언제나 그랬듯이 매체를 통해 들려오는 아름다움의 캠페인은 전혀 비공감이다. 누가 상정한 아름다움인가. 상업적이고 미디어적인 아름다움에서는 화폐 냄새는 날지언정 향기는 없다.
나이 좀 들어가니 또 좋은 점은 분별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사람을 볼 줄 알고, 사리사욕에 휘둘림이 적고, 영원한 것이나 궁극의 것에 대한 집중이 좋다. 그렇게 영의 탄력과 궁극을 향한 묵묵한 전진 속에 사십의 연소함을 뒤로하고, 오십의 산들바람을 곁에서 맛보며 매우 두근거리는 육순 소녀의 꿈을 꾸고 있다.
하여 중간 산 높이 정도를 몇 개 넘은 친구들끼리 모의를 했다. 운동하고 건강관리 잘하고 있다가 샌디에고에서 알라스카까지 포휠 드라이브를 하고 거기서 비행기타고 다시 샌디에고로 귀로하는 환갑잔치를 하자고 한 것이다.
이십 중반에 헤어져 아직 실물 확인 못한 친구도 카톡으로 실시간 소통을 하고, 이 아주머니들이 할머니에 폭 빠지기 전에 생애 최초의 일탈로 환갑잔치 아이디어를 내는 똘똘한 친구 덕에 소풍날 받아놓은 애가 되어버렸다. 그 중에서도 내가 제일 문제의 인물이고, 조국 대한민국을 열심히 살아내는 일인이다. 그러니 나 스스로 ‘부디 건강하거라‘ 다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나를 딸로,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삼아 주셔서 감사하고 이제껏 보살펴주신 은혜가 아니면 이리 있겠는가. 만사가 모두 감사할 일이다. 그래서 나이 먹을수록 야무진 꿈이 생기기도 한다. 아름다운 연로함을, 소박하고 따스한 품음을, 햇살 같고 시원한 그늘 같은 나눔을 꿈꾼다. 그래 하나님께 간청해본다.
“하나님, 저 잘 늙어가고 있나요, 봐주세요. 꼭 그리 되고 싶어요.”
그리고 친구들에게고 말하고 싶다.
“친구들아, 제일 겁나는 건 너무 알아진다는 사실이야. 보기 좋은 것과 안 봤으면 싶은 그 경계가 도드라진다는 거야. 변하기는 점점 어려워지니 좋은 아줌마의 아름다움의 최대치에 접근해 가자. 우리처럼 재야에 묻힌 여인네들의 속닥거림이 진짜인거야.”
이것은 여자인 나만의 주장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랴. 우리는 나름 식민적인 이 땅을 살아가는 독립 운동가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