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숲 가는 길
<최광희 목사, 행복한교회>
“어느 순간 예고도 없이 하얀 자작나무 숲과 같은 신세계가 펼쳐질 것입니다”
저는 목회하느라 언제나 가족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저의 세 아들은 집사 임명을 받은 적도 없지만 교회에서 집사도 되었다가 청소부도 되었다가 가끔은 전도사가 되기도 합니다.
올해는 이런 가족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2박 3일이나 휴가를 떠났습니다. 마침 친분이 있는 군인 가족이 있어서 도움을 받아 강원도 인제에 다녀왔습니다.
인제군 원통면은 제가 대학생 시절에 대학생 병영 체험을 왔던 곳인데 무려 35년 만에 와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옛날에는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하던 인제인데 지금은 교통도 좋아지고 좋은 관광지도 많아진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우리나라가 그만큼 잘 사는 나라가 된 증거입니다.
인제에 오기 전에 검색을 해 보니 원대리 자작나무 숲이 꼭 가볼만한 곳이라고 추천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제에 오자마자 숙소에 짐도 풀기 전에 자작나무 숲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제가 바라던 것과는 좀 달랐습니다. 제가 바란 것은 차에서 내려 한 100미터 쯤 걸어가면 하얀 자작나무 숲이 펼쳐지고 시원한 그늘과 편안한 벤치가 있어서 두런두런 대화하고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가지고 온 간식이 있다면 더 분위기가 좋겠죠.
그런데 주차장에 차를 두고 자작나무 숲이라는 곳으로 걸어 들어갔는데 자작나무는 아직 보이지 않고 비탈진 산길이 시작되었습니다. 미리 검색해본 정보로는 900미터 코스가 있고 3키로 미터 코스가 있다 길래 가볍게 900미터만 다녀올 참이었는데 들어가다 보니 갈림길이 나왔습니다.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넓은 길은 많이 가파르다고 합니다. 그래서 좀 좁고 평탄한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완전히 기대 밖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편한 길이란 없습니다. 저는 자작나무 숲으로 가는 길이 마치 천국 가는 길과 같다고 생각하며 그 길을 걸었습니다.
날씨는 덥고 습도는 높은데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고 자작나무는 몇 그루 보이는가 싶더니 다시 흔한 잡목들이 펼쳐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옛날에 군복무하며 행군하던 생각이 났습니다.
가볍게 생각하고 동행하던 아내에게 힘들면 무리하지 말고 그냥 돌아가자고 했지만 아내는 오기가 발동해서 자작나무 숲을 보고야 말겠다고 했습니다. 간간히 내려오는 분들에게 물어보면 조금만 더 가면 자작나무 숲이 있다는 희망적인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먼저 은혜를 체험한 분의 간증이 힘든 성도에게 꽤 위로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다가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계곡을 만나 손도 씻고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시고 나니 힘이 좀 났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천국 길에도 때로는 시원한 계곡을 만나게 하셔서 새 힘이 솟게 하십니다.
그런데 거기서부터 길은 더 험해지고 좁았습니다. 좁은 숲속이라서 좀 시원해지긴 했지만 습도는 더 높아지고 땀은 비 오듯 했습니다. 막내아들은 그만 가고 싶다고 돌아섰다가 다시 힘을 내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내가 뭐하는 짓인지, 그깟 자작나무 숲을 봐서 무엇을 하겠다고 이 고생을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내려오는 분에게 더 자주 자작나무 숲에 대해 물어봤더니 여전히 조금만 가면 된다고 했습니다. 남은 것은 오기 밖에 없어서 계속 올라갔는데 갑자기 눈앞이 환해졌습니다. 온 산에 모든 나무가 하얀 자작나무 숲이 나타났습니다.
거기에는 신세계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연신 감탄하며 카메라는 꺼내서 360도를 회전하며 동영상을 찍었습니다. 조금 뒤쳐진 아내도 드디어 자작나무 숲에 도착해서는 첫 마디가 이걸 못 보고 갔으면 얼마나 후회할 뻔 했느냐고 했습니다.
줄줄 흐르는 땀을 좀 식히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에 돌아오는 길은 아까 사람들이 가파르다고 말해 주었던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결국 우리가 산길 3킬로미터를 다 올라오고 말았습니다. 사실은 완만한 길로 오느라 더 멀리 돌아서 올라온 것입니다.
다른 코스로 내려오는 길은 넓고 평탄해서 좋았습니다. 만일에 다시 온다면 이 길로 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길을 3킬로미터 계속 내려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가파른 길을 계속 걷는 것보다 차라리 돌부리도 있고 계곡도 있던 그 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천국까지 갈 때에 누구나 한 길을 택해서 걸어갑니다. 누구는 목사로 살고 누구는 사업가로 살고 혹은 음악가로 혹은 농부로 살아갑니다. 또 이 남자 혹은 저 여자를 택해서 가족이 되어 함께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떤 길을 가든지 누구나 자기 길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길을 부러워합니다.
그냥 살기도 힘든 세상을 믿음으로 살자니 훨씬 힘이 들어 때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천국을 포기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은혜 받은 분들의 간증에 용기를 내고 때로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억울해서 오기로 걸어갑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예고도 없이 하얀 자작나무 숲과 같은 신세계가 펼쳐질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다른 사람에게 포기하면 후회하게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하게 될 것입니다.
자작나무 숲으로 가는 길은 천국 가는 길의 모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