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구속사역과 구약성도 <8장 6항> 1
<김병훈 목사, 합신 조직신학 교수>
8장 6항: “구속사역은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신 이후가 될 때까지는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구속사역으로 인한 능력, 효력, 그리고 유익은 창세로부터 계속해서 모든 시대에서 선택을 받은 자들에게로 전달이 되었다. 그것들은 그리스도가 계시되었던 약속들, 모형들 그리고 희생제물들에 의해서 전달이 되었으며,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인의 씨로, 그리고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 양으로 표지가 되었다.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기 이전에 살았던 구약시대의 옛 성도들은 세상을 떠난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신약시대 이후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으로 인하여 그를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으며, 세상을 떠날 때 바로 낙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성육하여 이 세상에 오시기 이전에 살았던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아직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신약시대 이후의 성도들처럼 낙원에 가지 못한 채 다른 어떤 상태나 장소에 가 있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신앙고백서의 답은 본 항에서 “구속사역은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신 이후가 될 때까지는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구속사역으로 인한 능력, 효력 그리고 유익은 창세로부터 계속해서 모든 시대에서 선택을 받은 자들에게로 전달이 되었다”고 교훈한 것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효력이 구약시대의 성도들에게도 미리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그들도 신약시대 이후의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사후에 바로 낙원에 갔음이 확인이 됩니다. 이러한 교훈은 로마 가톨릭의 잘못된 견해들 중의 하나를 바르게 교정하여 줍니다. 그것은 소위 선조림보(Limnud patrum)라는 교리입니다.
로마 가톨릭은 구약교회의 의인인 선조들이 선조림보라 일컫는 곳에 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림보란 음부의 가장 윗자리에 있는 곳입니다. 음부는 가장 아랫자리에 악인들이 죽어서 가는 지옥이 있으며, 그 다음에 그것의 가장자리에 이웃하여 있는 연옥이 있고, 그리고 그것들 위에 소위 구약교회의 선조들이 가는 선조림보와 세례를 받지 못한 채 죽은 유아들이 가는 유아림보(Limbus infantium)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믿기를 구약교회의 선조들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기까지 선조림보에 갇혀 있다가,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에 육체가 무덤에 계시는 동안 그의 영혼으로 지옥에 내려가셔서, 선조림보에 있는 구약성도들의 영혼을 구하실 때에라야 비로소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의 처소인 하늘로 가게 된다고 주장을 합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그가 실제로 성육신 하신 이후가 될 때까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구약교회의 선조들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유익들을 아직 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로마 가톨릭의 주장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품”(눅 16:22)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천국에서 누리는 잔치(마 8:11), 그리고 기름을 등과 함께 준비한 지혜로운 처녀들에게 허락이 된 혼인잔치(마 25:10) 등이 모두 선조림보를 가리킨다고 해석을 합니다.
이들의 주장과 달리, 거지 나사로가 죽어서 들어간 “아브라함의 품”이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함께 앉은 “천국”과 신랑을 맞이하는 혼인잔치는 모두 다름 아닌 영광스러운 하늘을 뜻합니다. 만일 아브라함의 품이 로마 가톨릭이 믿는 바대로 단지 림보일 뿐이라면, 나사로는 결코 아브라함의 품에서 좋은 것과 위로를 받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눅 16:25).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천국에서 누리는 잔치에는 구약 성도들뿐만 아니라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이들과 함께 천국에 앉아 있습니다. 이들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구속 사역을 성취한 다음에 부름을 받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뜻합니다. 그들은 이미 구속사역이 완성된 이후이므로 선조림보에 들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앉게 되는 천국도 또한 결코 림보일 수가 없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림보를 오히려 낙원이라 말하며 궁극적인 복락은 미루어져 있지만 그래도 복된 상태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바에 따른다고 하더라도 림보에는 고통은 없지만 죽음이라는 상태로 있으며, 하나님과 함께 하는 복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어떠한 좋은 것과 위로가 있을 수가 없는 곳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회개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고 말씀하신 낙원은 결코 하늘의 영광스러운 복락이 유보된 일시적이며 잠정적인 상태가 – 그들은 이것도 행복의 한 종류라고 말하지만 – 아닙니다.
낙원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강도에게 자신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낙원이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지극한 복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스도도 또한 복락의 상태에 있지 않은 것이 됩니다.
아브라함이 죽어서 간 곳은 거짓된 림보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히 11:10), 곧 성도가 죽어서 가는 영광의 낙원입니다. 그러한 낙원을 바라며 야곱은 주의 구원을 기다린다고 말하였고(창 49:18), 시편 73편은 이것을 바라보며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24절)라고 노래한 것이며, 또한 다윗은 자신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한 것입니다(시 31:5).
여기서 주의 손이란 심판주의 무서운 손이 아니며, 또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진 죽음의 상태가 아니며, 다만 영광 가운데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과 자비의 손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돌아가시기 이전에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의탁하셨던 바대로, 하늘의 영광 가운데로 영접을 받을 것을 소망하고 확신하는 가운데 부탁한 것입니다.
구약교회의 성도들은 모두가 죽은 후에 누릴 영광을 바라보았으며, 그들의 소망대로 낙원에 가 있습니다. 그들은 결코 림보라는 곳에 가 있지 않습니다. 림보 교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거짓된 교리일 뿐입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