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의 신학적 입장 수용 못해”
한복협,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 발제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목사)는 지난 6월 10일 서울 저동 영락교회에서 ‘나의 삶을 돌아보며 나누고 싶은 것들’을 주제로 6월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를 열었다.
이날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전 독일 튀빙겐대학 교수)가 발제하고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가 논찬했다.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는 발제에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시작으로 신학생 시절, 선교사역, 신학교 교수로서의 삶, WCC와 에큐메니컬운동에 대한 입장 등을 차분히 이어갔다.
1929년 독일의 한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부모로부터 기독교 신앙과 낙관적인 삶의 태도 등을 배우며 성장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소련군에 3일간 붙잡혀있기도 했으나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경험도 들려주었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신학을 공부한 그는 남아프리카 선교사로 파송되어 1965년까지 9년간 선교사역에 헌신하기도 했다. 이후 독일 튀빙겐대학교 교수로 초빙되어 후학 양성에 주력했으나 역사적 성경 비판학에 물든 당시의 신학적 풍토를 따르지 않아 동료 교수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WCC와 에큐메니컬운동을 수용할 수 없었던 신학적 입장도 밝혔다.
바이어하우스 박사는 “1968년 4차 WCC 총회에 참석했다가 ‘타종교와의 대화’ ‘인종차별’ 등에 대한 WCC의 방향 때문에 갈등했다”며 “기독교 외에 구원이 있다는 신학적 입장과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무력투쟁을 해야 한다는 WCC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바이어하우스 박사는 한국을 15번이나 방문한 특별한 한국 사랑을 밝히면서 아직 북한을 방문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표했다.
이어 논찬에 나선 김영한 박사는 “바이어하우스 박사께서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독일과 세계 각처에서 펼친 한결같은 복음주의적 정신과 활동은 오늘날 우리 복음주의 후예들에게 깊이 각인되고 있다”며 “귀하의 한결같은 복음주의적 활동에 경의를 표하며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해주실 것을 기원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