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 받는 주기도문
< 김진옥 목사,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교수 >
“현대 사본비평학은 조화로운 사본을 비판하고 해체하는 데서 시작해”
원문확정을 위해서 중요하게 사용되는 사료 가운데 성구집(lectionary)도 포함된다. 성구집은 초대교회로부터 사용된 전통 있는 사료로 성경봉독을 위해서 제작된 말씀 모음집이다.
성구집은 사본학의 중요 사료
성구집에 담겨진 말씀은 인용문이기 때문에 이차적인 사료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의 중요 본문들만을 간추린 편집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사본비평학에서 성구집에 담겨진 인용문들은 성구집(lectionary)의 이니셜인 소문자 l 로 표기하고 번호를 붙여 분류하였다(예: lectionary 24 = l 24). 현재까지 발견되어 참고할 수 있는 성구집은 2300개 이상으로, 적지 않은 숫자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성구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7/8세기이며(l 559), 이들은 모두 조화로운 비쟌틴계 다수 사본의 전통에 속해 있다. 때문에 비평 사본학자들은 자신들의 편집비평에서 10개 남짓 극소수의 성구집만 취급하고 있다. 하지만 개혁주의 사본학에서 성구집의 자리는 작지 않다. 그 이유는 이들의 기록 연대가 비교적 후반임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 공적으로 사용되어 읽혀졌다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성구집에서 발견되는 본문들은 교회를 통해서 검증된 긍정적인 본문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반면에 성구집이 예식을 위해서 기존의 본문들을 수정편집 하였다는 점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8세기 성구집 사본의 예: l 269(마8:31-36)
성구집의 단골손님인 주기도문에도 사본상의 이문이 존재한다. 오늘날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헬라어 편집성경(NA28, UBS5)에서는 “대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이 삭제되었다.
보편적으로 비평학자들은 이 부분이 매끄러운 기도의 진행을 위해서 추가된 본문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이러한 매끄러운 주기도가 성구집에서 온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 구절에 대한 ‘사본들 상의 증거’(外證)는 다른 것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시나이사본과 바틴칸사본 등 소수의 유력한 사본들은 이를 생략하고 있다. 하지만 다수사본을 비롯한 대다수의 사본들은 생략된 본문을 포함하고 있으며, 어떤 사본들에서는 교리적 변호를 담은 변형도 발견된다. 1)
특별히 서방교회가 공인한 정경이라 할 수 있는 불가타가 이 부분을 생략하였다는 점과 성구집 2211번도 특이하게 이를 생략하고 있다는 점이 이들의 주장과 대치된다. 때문에 주기도문 13절 하반절은 교회의 필요에 따른 수정이 아니라 원래부터 존재하였던 사본상의 이문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 구절의 본문확정에서 또다시 떠오르는 중요한 쟁점은 알렉산드리아 계와 비쟌틴 계의 대립이다. 짧고 어려운 본문의 경향을 보이는 알렉산드리아 계의 사본들은 13절 하반절을 생략하고 있고, 좀 더 길고 매끄러운 본문을 보여주는 비잔틴 계의 사본은 13절 하반절에 생략된 본문을 포함하고 있다.
현대 사본비평학은 일반적으로 다수사본을 평가절하하고 있다. 사실 현대 사본학은 문맥과 문장이 매끄럽고 조화로운 다수사본을 비판하고 해체하는 데서 시작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도 큰 소실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감과 무오를 기초로 개혁주의적 성경원문을 구축하려 함에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다수사본을 평가절하 하여 마 6:13 하반절이 교회의 필요에 의하여서 첨가되었다는 주장은 지나치다. 이 부분은 교회가 필요하여서 더한 본문이 아니다. 알렉산드리아계의 사본들은 6:13 하반절이 없는 주기도문을, 비쟌틴계의 사본들은 6:13 하반절을 포함한 본문을 가졌을 뿐이다.
그럼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사본학이 어떤 본문을 지지할 수 있는가? 칼빈은 현대사본비평에서 거의 요한복음의 본문으로 여겨지지 않는 요 7:54-8:9의 간음한 여인에 대한 구절에서 매우 의미 있는 결론을 대리고 있다.
“유익하게 적용할 수 있는 이 본문을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다.” 2)
주기도문의 경우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완전하지 않은 비평 사본학자들의 편집이론을 따라 이 귀중한 기도를 굳이 삭제할 이유가 없다.
비평만이 좋은 대안일 수 없어
그 어느 누구도 주님이 가르쳐 주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나이다. 아멘”이라는 위대한 송영의 기도를 교회로부터 빼앗지 못할 것이다.
1) 대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나라가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소문자사본 1253 등).
2) 칼빈의 요한복음 8:3의 주석에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