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뉴런
< 정요석 목사, 세움교회 >
“신자들은 자신의 인격과 능력 넘어서는 자리 탐하지 않는 것이 좋아”
사람의 뇌에 ‘거울 뉴런’(mirror neuron)이라는 세포가 있습니다. 이 세포 때문에 상대가 공을 쥐는 행동을 하면, 내 뇌도 공을 쥐는 것과 연관된 신경이 작동합니다.
1990년대 이탈리아 과학자들이 원숭이에게서 처음 발견했는데, 영장류는 모두 거울 뉴런을 갖고 있어서 동료의 아픔과 기쁨을 자기 것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권력을 쥐면 이런 감정이입이 줄어듭니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남을 압도했거나 의존한 경험을 글로 쓰게 했습니다. 즉 권력을 쥔 상사의 상태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미약한 존재로 생각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이 손으로 고무공을 쥐는 영상을 보여주고 뇌 활동을 측정했습니다. 그랬더니 권력자의 상태를 생각한 이는 거울 뉴런이 거의 작동되지 않았고, 미약한 존재를 생각한 이는 활발하게 작동되었습니다.
남녀 구분 없이 권력자들은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 호르몬이 증가합니다. 코카인에 중독되면 뇌에 만족감을 주는 도파민 분비가 늘어나는데, 테스토스테론이 도파민 분비를 촉진합니다. 그래서 권력자는 마약 중독자처럼 그 달콤함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점점 독해지기 쉽습니다.
사울 왕도 보십시오. 그는 왕이 되기 전에는 행구 사이에 숨을 정도로 겸손했습니다. 하지만 권력의 맛을 본 뒤에는 하나님 대신에 권력을 중심에 두었습니다. 점점 분별력을 잃었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는 여인들의 노래를 사울이 부드럽게 수용했다면 그는 만만을 죽인 다윗이라는 훌륭한 부하를 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노래를 역하게 받아들여 만만을 죽인 다윗을 적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여로보암도 마찬가지입니다. 솔로몬의 감독관으로 있을 때에는 훌륭했지만 열 지파의 왕이 되자 권력을 숭상했습니다. 무엇을 하든 권력 유지에 초점을 맞추어 판단했습니다.
성도들은 자신의 인격과 능력을 넘어서는 자리를 탐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그릇을 넘어서는 자리를 얻으면 그 자리가 주는 즐거움은 누릴지 모르지만, 그 자리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힘들어집니다. 자신의 리더십을 받는 사람들의 기쁨과 아픔을 공감하며 안정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할 만큼의 자리만 바라는 것이 좋습니다.
목사도 권력의 자리가 되기 쉽습니다. 그렇게 선한 동기로 목사가 된 이들이, 그리고 실제로 순진하고 선했던 그들이 교회의 규모가 커지며 안정된 담임목사의 맛을 보게 될 때에 점점 변해갑니다.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의 영향을 극복하지 못하는 목사는 자신이 변한 것을 모릅니다. 성도들과 같이 즐거워하고 울던 낮은 마음이 어느새 효율과 생산성과 권력유지의 높은 마음이 된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 교단은 서로 총회장과 총무와 노회장이 되려고 은밀히 선거운동 하는 이들과 파벌이 없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거울 뉴런이 작동되지 않는 이들이 교단과 신학교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으니 교단의 어디를 가도 권력의 긴장감이 없습니다. 이러한 건강성이 계속 유지된다면 우리 교단은 타 교단들에게 이렇게 교단이 운영될 수 있다는 개념과 도전을 안겨줄 것이고, 바로 이것이 타 교단들에게 주는 큰 선물일 것입니다.
우리 교단은 권력의 자리가 상대적으로 적어 정치 목사가 적고, 교단 역사가 짧아 파벌이 형성되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앞으로 교단이 커지고 역사가 길어지면 언제 어떻게 부패가 시작될지 모릅니다. 우리 모두가 별 수 없는 인간임을 인정하고,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선거 운동을 더 하지 않고, 어느 개인이나 기수나 파벌이 좋은 자리에 더 오래 앉지 않고, 이득을 쫓아 더 줄서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거울 뉴런이 작동되지 않는 자는 그가 아무리 큰 교회를 하고, 큰 권력을 가진 자라도 우리가 존경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교단이 갖고 있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정신은 무엇보다 귀합니다.
이 정신으로 제20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4월 13일 총선에 임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