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이 시사하는 것
< 김영규 목사 >
개혁주의성경연구소 소장
뉴욕과학아카데미(NYAS)
미국과학 진흥협회(AAAS)
미국화학학회(ACS) 초청회원
“인공지능보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이 가장 큰 인류의 경계 대상”
최근 인공지능 프로그램에는 몬테 카롤로 나무 탐색 프로그램이 이용이 된다고 알려지고 있다.
인공지능에 있어서 중요한 기능은 배우는 기능이다. 바둑 게임과 같이 사람들이 바둑알을 둘 수 있는 교점의 수들이 고정이 되어 있을 때, 그 배우는 과정에 있어서 매 교점들이 점진적으로 선택된다는 조건 아래 그 임의성에 있어서 틀릴 수 있는 경우와 맞을 수 있는 경우들에 대한 확률이 최대로 높은 점들을 선택하면서 마치 나무의 가지들과 잎들이 형성이 되듯이 참된 교점들이 찾아지는 탐색기술들과 확장기술을 통해 배우게 된다고 한다.
또한 승률이 가장 높은 예견 교점에 대해서 다시 시뮬레이션들이 이루어져 가장 확률이 높은 교점이 선정이 된다. 동시에 그 교점이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예측 확률도 관측되면서 매 교점들의 선택을 반복하여 게임이 이루어지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보면 마치 그 프로그램 자체가 어떤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게임에 임하고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역시 그런 프로그램화되어 있는 인공지능 게임 프로그램의 경우 게임이 더 진행되면서 그 승리 확률에 대해서 예측 시간이 짧아지기 때문에, 게임에 임하는 인간에게 압박감도 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이 인공지능이 미래에 더 발전하여서 사람이나 다른 동물처럼 뇌 신경망이 뇌 세포들의 기능하는 방식이나 전체 DNA 유전 정보 안에 유전 인자들의 상호 자극이나 억제 기능을 하듯이, 게임 전체의 마지막 승리를 향하여 매 교점들 사이에 복잡한 자극과 억제의 기능 망들이 형성되도록 프로그램화되는 경우 더 생명체와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서 자연적 뇌 기능들이나 유전 정보들의 기능 망과 컴퓨터 기능 사이에 근본적인 큰 차이가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첫째, 사람들이나 동물들의 뇌 기능들 그리고 크고 작은 단백질들 사이의 기능 망들의 유동성이나 통일성의 깊은 배경에 대해서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바 없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 중앙처리 장치들의 회로도는 우리가 뻔히 알고 있지만, 우리 몸의 각 체세포들의 핵 안에 염색체들의 정보들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아는 바가 없는 것처럼 각 교점들이라고 가정이 되는 뇌 세포들의 핵 안에 있는 회로도 역시 실제로 밝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세포질 밖에 있는 정보 전달체들이나 세포질과 핵 사이에 정보들을 전달하고 받고 있는 정보 전달체들의 기능들이 몸 전체의 기능들을 축소하고 있는 듯 그렇게 복잡한 유기적 기능 망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어서 극히 제한된 정보 전달 방식들만을 우리가 밝히고 있는 정도일 뿐이다.
둘째, 의식의 지향적 성격과 함께 지각들의 지향적 성격 때문에 하나로 선택하면서 앞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 일치점이 있으나, 지각 기관들에 의해서 수집할 수 있는 정보들이 아무리 제한된 경우의 수일지라도 실제로 자연 자체 전체 정보의 수만큼 큰 수라고 해야 될 것이고, 의지가 하나로 나타난다 할지라도 우주의 어느 시점에 갖다 놓아도 그 모든 경우들의 수를 포괄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임의성을 가진 한 점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 가장 어려운 부분은 이 물질 세계가 아닌 영혼의 세계에 들어가도 그 세계 안의 모든 경우의 수들에 대해서도 그 의지는 자유로운 무한한 경우의 수들로 있을 한 점이라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비해 컴퓨터가 기능으로 발휘하는 임의성은 그래도 게임의 규칙들 안에 있는 경우들의 수만큼 제한적인 임의성이라고 해야 될 것이다.
셋째, 컴퓨터의 비가역적 진행 성격은 생명체들의 비가역적 선택과 성격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인간은 의지 자체를 포기할 수 있되, 감성들에 의해서도 쉽게 영향을 받는다. 곧 기분이 나빠서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성격은 컴퓨터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인간의 능력일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내가 이기지 않고 희생하고 잘못과 거짓과 죄에 대해서 인내하는 것과 같은 의지의 표현은 도저히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따라 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일 가능성이 높다.
넷째, 기억에 있어서의 차이이다.
컴퓨터에는 디스플레이 장치가 있다고 해도 인간의 뇌가 최종적으로 도달한 디스플레이 현상과는 다른 것이고, 인간의 뇌의 정보들이 최종 상영이 되는 영역은 우리의 물질 입자들의 어떤 공간의 개념에 의해서 설명이 되지 않는 공간이며, 오히려 우리 물질세계의 공간이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해야 한다.
그런 세계에 대한 차이가 가장 결정적이지만, 다만 컴퓨터의 연산능력이 높다는 것도 인간이 구상하는 저장방식 자체가 마치 원자탄을 만들어 터뜨려 놓을 때, 그 세세한 과정을 통제할 수 없듯이 저장한 비트 단위 자체가 전혀 유동성 없이 그 영역의 세세한 부분들을 통제할 수 없는 파괴적이고 그 파괴를 매우는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해야 한다.
다섯째, 우리의 물질세계 뒤에 다른 세계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없다는 사실에 있다.
인간의 뇌 기능이나 감성 그리고 지각들조차도 그런 디스플레이 세계가 밝혀진 바 없기 때문에 더욱 더 아무 것도 우리에게 대해서 푼 것이 없다. 더구나 물질세계조차도 에너지 개념이 근거하는 우리의 절대속도보다 큰 절대속도의 세계들을 그 배경으로 두고 있다면, 물질세계의 질서들의 기능 망도 처음부터 근원적으로 다르게 설명되어져야 한다는 문제들이 항상 뒤따르기 마련이다.
이상과 같은 기본적인 몇 가지 차이들에 비추어 보아도 우리가 창작하는 인공지성에 대해서 전혀 놀라워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특히 하나님의 계시에 기반을 둔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욱 더 그런 인간의 창작물에 대해서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염려해야 할 것은 사람들에 관한 것이고 그들의 죄들에 대해서 염려해야 할 것이다. 곧 인류에게 있어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이 가장 큰 경계의 대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