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 박발영 목사, 한우리교회 >
“교회가 세상의 힘을 가진다고 해서 세상은 절대로 달라지지 않아”
영어로 개혁주의는 ‘Reformed’로 ‘Re’와 ‘form’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이며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것을 도입한다는 뜻이 아니다. 맨 처음에 제작된 완성품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개혁의 참뜻이다. 즉 우리가 새로운 것을 도입하여 고치는 것이 개혁이 아니라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참 개혁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개혁주의는 성경을 신앙과 생활의 절대적인 유일한 권위로 믿는다.
개혁주의는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을 강조한다. 그래서 개혁주의 실천은 “이 성경을 가지고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여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자 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끊임없이 개혁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개혁주의 교회란 “성경을 가지고 성경이 말하는 교회를 목표로 삼고 성경을 가지고 끊임없이 개혁해 가는 교회“를 말한다. 이 지상에는 완전한 신학도 완전한 교회도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러므로 끊임없이 성경을 가지고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여 끊임없이 교회를 개혁해 가야 하는 것이다.
개혁주의 교회가 성경을 가지고 교회개혁을 멈춘다면 개혁주의 교회라고 할 수가 없다. 맬컴 워츠는 “참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끊임없이 교회를 개혁해 가는 교회로서, 성경의 진리를 옹호하고 선포하는 교회를 말한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성경을 가지고 교회개혁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우리는 끊임없이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 교회는 과연 성경이 말하는 그 교회인가? 우리가 섬기는 총회는 성경이 말하는 그 총회인가?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성경이 말하는 그 기독교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런데 요즘 교회들은 고지론(高地論)에 빠져 있는 것 같다.
고지론이란 전투에서 고지를 점령해야 그 전투를 이기고 영토를 장악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 파워 집단을 장악하여 그곳에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고지의 정복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지론은 출세와 성공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피를 뜨겁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교인들이 세상의 복을 많이 받아야 한다는 기발한 논리를 마치 교리인양 주저 없이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이 또한 우리 현실이다. 알게 모르게 이 고지론 사상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깊게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신앙인 관점에서 생각할 때 이것은 철저히 반성경적이며, 의미를 주의 깊게 헤쳐 보면 사실상 ‘탐욕’을 부추기는 위장된 ‘기복신앙’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받아 드릴 수 없는 사상임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고지론은 성경이 말하는 그 기독교 사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한 때 교회가, 즉 교황이 황제를 임명할 만큼 세상의 힘을 가졌을 때가 있었다. 그 때가 바로 중세시대였다. 그 때 기독교가 어떠했는가? 바로 그때 기독교는 가장 타락했다.
헤르만 바빙크가 네델란드 수상이 되어서 목회자들이 내각에 많이 들어가 정치를 하였을 때가 있었다. 그 유명한 3대 칼빈주의자가 수상으로 있고 목회자들이 장관을 하고 있었으니까 사회가 달라졌을까? 아니다! 오히려 범죄율이 더 많았다고 한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파워 집단이라 불리는 국회의원, 정치가, 판검사, 변호사, 의사, 교수, 그리고 기업인들 중에 기독교 신자가 무려 30-40%에 이른다. 당장에 국회의원은 40%가 그리스도인임에도 권력자들의 부정부패는 최근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리고 현재 동성애법이 통과 될 상황에 있고 간통죄가 폐지되고 불륜공화국이 되어가지 않은가?
작금 한국교회는 대단히 많은 고지를 이미 점령한 상태이고, 또 과거부터 이미 점령해온 바 있다. 심지어 기독교인 대통령도 벌써 세 번이나 배출했다. 그런데도 왜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가? 그리고 왜 교회는 갈수록 타락하고 복음의 빛은 퇴색해 가고 있는 것인가?
교회가 세상의 힘을 가진다고 해서 세상은 절대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한 한 예이다. 그래서 쉐이퍼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최상의 가치는 세상의 성공도 부도 행복도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최상의 가치는 하나님 자신과 거룩일 뿐이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성공과 행복을 쫒는다면 그것 때문에 망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가난하고 힘없는 자리에만 있어야 한단 말인가? 그런 말은 결코 아니다. 물질도 윤리도덕도 선행도 성공도 행복도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쫒을 때 따라 오는 것들 일 뿐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이 따라오든지 오지 않든지 상관없다. 세상 가치관과 세상 잣대로 성경을 판단하지 말라!
고지에 오르면 선한 일을 할 수 있으니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말에 속지 말라. 우리의 고지는 오직 하나님자신일 뿐이다. 하나님을 절대가치로 쫒았는가? 복음을 절대가치로 쫒았는가가 중요하다.
그래서 “주님이면 충분하다, 복음이면 충분하다”는 고백이 나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