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
< 배현주 목사, 주교장로교회 >
“해석하기 어려운 성경 본문은 좀 더 평이한 성경 본문으로 해석해야”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는 제1장 7항에서 “성경 안에 모든 것들이 그 자체 안에 서로 마찬가지로 동일하게 분명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모두 동일하게 명료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구원을 위하여서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고 믿어야 하며 살펴야 하는 것들은 성경의 몇몇 본문이나 다른 본문 안에서 그렇게 분명하게 제시하고 열려있다. 그것은 학식있는 자 뿐만 아니라 학식이 없는자까지도 정규적인 방법들을 합당하게 사용함으로서 충분하게 그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모든 성경 본문이 항상 모든 신자들이 일정하고 평이하며 분명하게 이해될 수 있도록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성경 안에는 난해한 구절이 있고 평이한 구절이 있다. 그래서 난해한 구절은 다른 평이한 구절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신자들이 구원에 이르기에 충분한 지식을 제공하며 단지 학식있는 자들만이 성경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언급한다. 누구든지 “정규적인 방법들을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서”(in a due use of ordinary means) 성경에 대한 충분한 이해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매우 중요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의 교리적 입장이다.
신구약 성경은 전문적인 신학 수업을 해야 해석할 수 있는 문헌은 아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정규적인 방법을 적절하게 사용하기만 하면 충분히 구원에 이르는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이 정규적인 방법이 바로 종교 개혁 시대에서는 일반 신자들을 가르쳤던 요리문답 교육이다.
모든 신자들은 적절한 정통 교리를 학습하여 깨닫고 그 터 위에서 다양한 성경 이해의 접근법을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신자들은 서로 올바르게 이해하게 된 성경의 교리를 나눌 수 있다. 그것이 매우 중요한 성도의 교제이다.
성도의 교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제하는 것이다. 단지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이 성도의 교제가 아니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서로 나누어야 한다. 그것이 참된 성도의 교제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장 17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실로 우리 시대의 교회는 정통 개혁 교리의 문답서에 대한 교육의 부실로 인하여서 신자들이 성경에 접근도 못하고 있다. 모든 교회들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는 여러 방도들이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는 제9항에서 성경 해석의 원리를 잘 가르치고 있다. “불멸하는 성경 해석의 법칙은 성경 그 자체이다”(The infallible rule of interpretation of Scripture is the Scripture itself.). 이는 달리 표현하면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가 된다. 이러한 원리는 관주 성경과 관련이 있다. 난해한 본문의 해석의 어려움을 다른 평이한 본문으로 보충하는 것이다(it must be searched and known by other places that speak more clearly). 이는 난해한 구절에 대한 더 명확한 해석 구절이 있다는 것이다.
17세기 스위스 쮜리히 개혁주의 신학자 요하네스 하인리히 하이데커(Johannes Heinrici Heidegger:1633-1698)는 그의 저서 “기독교 신학 통론”(Corpus Theologiae Christianae)에서 “모호하고 난해한 말씀에 대하여서 명백하고 분명한 본문을 따라서 판정한다”고 정의한다.
이어서 어거스틴의 저서를 따라서 진술한다. “어거스틴은 그의 [그리스도 교리]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성경의 가장 평이한 본문에서 의미가 드러나지 않는 난해한 다른 성경 본문은 없다.”
19세기 화란의 개혁주의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 박사가 편집한 [순수 신학 통론](Synopsis Purioris Theologiae:1625)에서도 동일한 진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의 조망 안에서 우리에 의한 모든 논쟁이 구성되는 것은 성경의 다른 명확한 본문으로 정확하게 이러한 조망이 대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인식하고 깨달을 수 있다. 그것들이 인식할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한다.”
요한 하이데커는 어거스틴의 저서를 따라서 성경의 분명한 본문으로 다른 난해한 본문을 해석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어거스틴의 견해를 따라서 볼 때에 신구약 성경에 대한 개혁주의 교리로서 “모든 성경”(Tota Scriptura)의 정신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신구약 성경이 어느 한 본문도 버려지지 않고 모두 일정한 방향의 교리적 진술을 지향한다고 하는 개념이다.
칼빈은 적정과 절도의 원리를 따라서 신구약 성경을 해석해야 할 것을 가르쳤다. 그것은 성경으로부터 지나쳐서 성경을 해석해서도 안 되고 성경 어느 본문을 버리면서까지 성경을 해석해서도 아니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직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개혁주의 성경 해석의 원리는 변할 수 없는 정통 교리이다. 로마 교회는 그 원리를 너무나 쉽게 버림으로써 점차적으로 미신으로 전락하였다.
이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의 교리는 성경 해석의 중요한 원리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를 배우게 되면 누구든지 성경을 어느 정도 해석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요한 하이데커는 그의 저서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순전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진술하였다. 그리고 마태복음 11장 25절을 인용하고 있다. “그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실로 그 당대의 로마 제국은 그 이전 헬라 제국 시대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헬라 철학이 절정에 이르렀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헬라인들은 지혜를 사랑한다고 말하였다(고전 1:22).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말하였다(고전1:23).
이러한 본문을 통하여서 알 수 있는 것은 당대의 헬라 철학의 사고 구조를 따라서는 성경이 해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헬라 철학과 구약을 혼합시켰을 때에 그 부류들은 기독교 분파주의로 전락하였다. 노스틱주의자들이(Gnostics) 그 대표적인 기독교 분파주의자들이다.
성 어거스틴이 그의 저서에서 진술한대로 오직 성경은 성경으로서 해석하며 좀더 평이한 성경 본문으로 난해한 구절을 해석해야 할 것이다. 다른 여러 세속 철학의 복잡한 사색의 구조로서는 성경 해석 되지 않는다.
마태복음 11장 254절 본문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이란 헬라 철학자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이란 순전한 마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실한 주의 제자들을 의미한다.
모든 사도들을 포함한 사도 시대 성도들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면하였으며 사도들을 통하여서 구약이 제대로 해석이 되면서 신약 성경으로 기록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