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초기의 교훈_이상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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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초기의 교훈

 

이상목 목사/ 전남노회 동산안교회

올 여름에는 장마와 더위가 유난했다. 올해에는 음력 6월이 두 번 있었다. 그래서일 까? 긴 장마가 반복되고 뜨거운 무더위가 찾아오기를 거듭하였다. 장마와 무더위에 신이난 것은 들풀이다. 내가 목회하는 교회에는 마당이 두 개 있다. 잔디 깔린 안마당과 주차장으로 쓰는 각종 과실수가 어우러진 바깥마당이다. 비와 무더위로 인해 한눈판 사이 마당은 크고 작은 풀로 덮였다. 넓은 마당에 솟아오른 풀의 기세는 대단하다. 어떤 풀은 어른 키만큼 크다. 줄기는 엄지손가락만 하다.

자란 풀을 보고 예초기를 점검하며 풀베기 를 벼르며 기다렸다. 예초기의 플라스틱 끈날을 새로 구입한 날카로운 쇠 날로 교체했 다. 그리고 마침내 정한 날에 무성한 풀 속에 들어가 베기 시작했다. 가만 보니 키가 큰놈일수록 먼저 칼을 맞는다. 키가 작은 놈일 지라도 웃자란 놈의 밑동을 향한 나의 예초 기는 사정없다. 예초기로 풀을 베면서 묘한 쾌감을 느낀다.

동시에 주님과 우리 삶에 관한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주인의 의도에 맞지 않는 풀은 결국 이렇게 주인에 의해 베임 당한다. 주인의 마음을 기쁘게 하지 않는 한 아무리 크고 튼실하게 자랐어도 자랑할 것이 없다. 예초 기의 위세에 눈 깜짝할 사이에 베인다. 나의 삶은 주인을 기쁘게 하는가? 나는 주님의 의도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가? 주인에게 사랑 스러울까? 웃자란 풀같이 꼴 보기 싫어 잘라 버릴 잡초일까? 주인이 기뻐하지 않는다면 풀들의 아귀다툼은 예초기를 만나는 순간 아무 의미가 없다.

웃자란 풀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자기 의와 기쁨을 추구하는 것에 중독되어 산 것이라 이해했다. 자기 의, 자기 만족,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기쁨과 만족과 행복을 약속하나 막상 받는 것은 허탈과 상실과 죄책 감뿐이다. 자기를 추구하는 것은 이기심과 함께 멸망의 불덩이로 찾아 들어가는 일이다.

예수님께서 “너희 아비는 마귀”라고 책망한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만든 거짓에 중독된 줄 알지 못한 채 그들의 메시아를 십자가에 달아 죽였다. 사람들은 살아남으려는 욕구를 따라 애쓰다가 두려움, 억울함, 답답함에 부딪힌다. 내가 옳다는 명분이 강하기에 내가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줄도 모르고 내뜻만을 주장한다. 예초기로 풀을 베듯이 주님이 오셔서 우리 삶을 판결하리라 하셨다.

말씀하신 대로 하실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기회의 시간이다. 그때까지 주 안에서 나를 돌아보고 말씀으로 점검할 것이다. 십자가에 매달려 피 흘리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주님 외에는 아무 소망이 없고, 주님 안에서만 소망이 있음을 고백 한다. “주여! 나를 이 멸망의 구덩이로 빠지는 중에서 건져 내시옵소서. 그리스도를 믿고 선을 행하다 주를 뵙게 하옵소서.” 기도는 간절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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