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는 교회, 섬기는 총회
― 주님의 통치는 섬김의 통치다 ―
제110회 총회에서 신임 총회장이 내건 표어는 “섬기는 교회, 섬기는 총회”이다. 이 표어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교단의 정체성과 방향을 담고 있다. 섬김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이 땅에 구현해 내는 중요한 방편이다.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최초 사명은 이 땅을 다스리는 일이었다(창 1:26~28). 그 ‘다스림’은 제멋대로 하는 군림(君臨)(domination)이 아니라, 창조 세계를 보존하고 가꾸는 청지기의 다스림(dominion)이었다. 하나님의 통치가 억압이 아닌 사랑의 섬김이며 질서와 생명을 세우는 통치이듯(시 33:5, 36:6),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맡기신 통치의 성격 역시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는 책임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을 택하신 목적 또한 ‘의와 공도’를 행하여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구현시키는 데 있었다(창 18:19). 다윗과 솔로몬 왕국의 다스림은 이 ‘정의와 공의’로 요약되었지만 완전하지 않았다(삼하 8:15, 왕상 10:9). 선지자들은 온전히 정의와 공의를 세우실 메시아의 통치를 예고하였다(사 9:7, 렘 23:5). 그 예언의 성취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섬김의 통치’로 드러내셨다.
예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다(막 10:45). 주님은 군림하지 않고 사랑으로 섬기셨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눌린 자를 자유하게 하시며,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섬김임을 보여주셨다. 그러므로 섬김은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구현되는 방식이며,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나는 자리다.
이 섬김의 정신은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교회와 그 광대 회의체인 총회의 근본 원리가 되어야 한다. 교회가 자기 보존과 성장에만 몰두하거나, 총회가 권위의 구조로 변질된 다면 섬김의 자리는 사라진다. 섬김이 없는 교회는 세상 조직과 다를 바 없으며, 섬김이 사라진 총회는 제도를 위한 제도로 전락하고 만다.
교회의 본질은 화려한 건물이나 프로그램에 있지 않다. 교회는 주님의 마음을 따라 약한 자를 품고, 지역 사회를 섬길 때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교회가 낮아질 때 복음의 빛은 더욱 밝게 비치며, 세상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본다. 마찬가지로 총회 역시 통제와 명령의 기관이 아니라, 지교회를 세워 주고 보호하는 섬김의 장(場)이어야 한다. 교회의 자유와 순결을 지키며, 작은 교회를 붙들고, 목회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총회가 될 때 그것이 곧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지도력이다.
“섬기는 교회, 섬기는 총회”라는 표어는 교회와 총회 모두에게 동일한 부르심을 전한 다. 교회가 섬김으로 세상을 밝히고, 총회가 섬김으로 교회를 세울 때 주님의 몸 된 교회는 더욱 견고히 세워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교단이 지향해야 할 하나님 나라의 생태계다.
이제 우리는 섬김을 교회와 총회의 심장에 새겨야 한다. 섬김은 약함이 아니라 강함이 며, 포기의 덕목이 아니라 통치의 방식이다. 주님께서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 듯, 우리도 낮아져 섬길 때 참된 권위와 영향력이 회복된다. 교회가 섬김으로 세상을 비추고 총회가 섬김으로 교회를 세울 때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이 땅 가운데 더욱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뜻이며 우리가 가야 할 교회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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