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은 어떻게 영광을 받으시는가?
변세권 목사/ 강원노회 온유한교회
기독교 신앙은 본질적으로 건전성을 지니며, 이는 생명적 특성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기독교가 지향하는 방향성은 합리적이며, 공공 사회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치고 정신적 지주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초기 기독교가 박해받은 원인은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국을 세운다’는 오해 때문이었지, 그 자체가 사회에 해악을 끼쳤기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독교가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할 때, 사회에 실질적인 유익을 제공할 수 있었고, 그 결과 긍정적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기독교는 점차 변질되어 탐욕과 세속적 욕망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사회적 비판과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문제 제기는 “하나님은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영광을 받으시는가?”라는 물음이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예수 그리 스도의 인격과 사역에서 찾을 때, 그 답은 명확 하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두 가지 본질적 진리에 기초한다. 첫째,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둘째, 하나님은 죄인을 새롭게 하시는 재창조의 주체이시다. 이 두 측면은 모두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 하나 님은 인간의 공로나 업적을 통해 영광을 받지 않으시며, 창조주로서의 고유한 지위를 인정받는 방식으로만 영광을 받으신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기에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소유이며, 그분에게는 결핍이 있을 수 없다. 창조의 목적은 우주 만물이 창조주를 인정하고 고백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으며, 이 목적은 현재에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 중심적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감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이 과정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에 연합한 자로서 공동체와 상호 교제하며,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하는 삶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실제 역사에서 기독교 신학은 지적·학 문적으로는 발전해 왔으나, 그 목적이자 결실 이라 할 수 있는 ‘교회를 이루는 삶’과는 괴리를 보여 왔다. 신학(교리)과 신앙(실천)이 분리될 수 없는데도, 많은 이들이 교회 생활을 형식 적으로 영위하며 본질적 원리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교회답게 존재할 때 비로소 그 생명적 활동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며, 하나님께서도 실제로 영광을 받으신다. 이는 곧교회 공동체 안에서 각자가 ‘지체’로서 자신의 자리를 담당하는 실천을 통해 보증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회론적 사유는 필연적으로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한 이론적 정식화에 머물지 않고, 개인의 삶 속에서 구현되 어야 한다. 곧, 교회의 지체로서 자신을 위치시 키는 일은 신앙의 본질과 직결되는 실질적 과제 이다. 바울은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하지 아니 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한다”(딤후 2:5)라고 언급한다. 기독교 신앙은 반드시 삶의 열매로 드러나야 하며, 자기 기만을 극복하고 성찰을 지속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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