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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말씀대로 살아보기

 

박종훈 목사/ 전북노회 궁산교회

‘농촌에서 살아보기’와 ‘말씀대로 살아보기’

점점 소멸해 가는 농어촌 지역의 지방 정부가 인구를 늘리기 위해 여러 정책을 추진하는 중인데, 그중 ‘농촌에서 살아보기’라는 사업이 있다. 귀농 귀촌에 관심 있는 도시인들을 대상으로 일정한 교육과 주거비용을 제공하며 적응과 타당성을 경험해 보는 기회를 주는 사업이다. 장밋빛 환상을 갖고 일시적인 감정에 휩쓸리거나 현실을 잘 몰라서 농촌에 거주하려다 실패 하는 경우를 줄어보자는 취지이다. 반대로 마음에 소원은 있지만 막연한 두려움으로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작게 시작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의 정책을 신앙적 영역에서 적용해 보면 어떨까?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활과 삶의 기준을 삼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의무이고 목표이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내기는 심히 어렵다.

말씀대로 살기가 어려운 이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내기 어려운 것은 말씀대로 사는 삶이 세상의 가치를 거슬러 올라가는 ‘거꾸로’의 삶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넓은 길은 망하는 길인데도 다수가 그 길로 간다. 반면, 좁은 길은 생명의 길임에도 그길로 가는 사람이 적다(“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 이라”, 마 7:14). 세상은 받는 것이 복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가르친다(“범사에 여러 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 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 라”, 행 20:35).

세상은 다양한 방법으로 보물을 땅에 쌓아두라고 부추기지만, 주님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씀 하신다(“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 마 6:20). 이 세상의 교육은 높은 자와 으뜸이 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지만, 예수님은 낮은 자와 작은 일과 작은 자들 에게 관심과 가치를 두도록 본을 보여주셨다(“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막 10:44).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나에게 이득보다는 손해가 될까 봐 말씀을 실천하기를 주저한 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룻기에서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자기의 기업 무르기 의무를 포기한 이유와 같다(“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 지라”, 룻 4:6).

말씀 실천의 유익

이렇게 말씀을 온전히 실천하지 못하는 연약함이 우리에게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처럼 곧이 곧대로 행하는 자들은 하늘의 맛을 누린다. 성도들이 가는 길은 이 세상의 풍속과 전통이 아니라 저 높은 곳을 향하는 길임을 하나님도 아시고 세상도 알고 있다. 주님 말씀대로 살아가노라면 우선은 손해 보는 것같지만 돌고 돌아 더 큰 유익으로 다가온다(“너는 네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전 11:1). 비단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행하는 자들만이 맛보는 영생의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은혜 위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원리를 설명한 말씀이다. 때에 적절한 좋은 말씀을 들으면 분명 은혜받았다고 여기지만, 이보다 더 큰 은혜는 말씀 대로 행하면서 체험하는 은혜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리 대단할지라도 때가 되면 무너지고 없어진다. 그러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얻어지고 받는 보배는 영원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하나 님을 시험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순종하려는 마음으로 시험하는 것은 더 깊고 높은 믿음의 과정이라고 확신한다. 성경은 그저 읽는 책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길이다. 성경을 덮는 순간, 그 말씀은 우리의 발걸음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