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시작된 가정의 위기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교회에서도 사회에서도 그렇게 부른다. 5월에는 연중 어느 때보다 식구들의 유대가 강화된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고 부부의 날도 있어서 가족이 모이거나 최소한 연락이라도 하기 때문이다.
가정은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 우리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족 구성원은 단순히 혈연으로 연결된 사람들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가정은 우리가 처음 접하는 사회이자, 가장 가까운 심리적, 정서적 지지대다. 기능과 형태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가정이 제공하는 안정감과 소속감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가정을 제도화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가정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으로 시작되었는데, 아담과 하와의 결혼이 첫 번째였다(창 2:18-20). 하나님은 먼저 아담을 만드시고, 다음에 하와를 만드셨다. 그리고 자녀들을 주셨다. 그렇게 가정을 통하여 생명이 이어지고 이어져서 지금까지 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우신 신성한 가정제도가 오늘날 근본부터 흔들리는 위기에 직면했다. 이혼으로 가정이 무너지고, 청년들의 결혼 기피로 혼인율마저 감소한 데다 동성애, 동성결혼 등이 인권과 소수자 배려라는 명분을 업고 가정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과거 이혼은 당사자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매우 어려 웠다. 이혼한 사람은 주홍 글씨를 가슴에 단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살았다. 이같은 현상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이혼은 금기시되었고, 이혼하면 교회를 떠나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혼이 쉽게 받아들여지고, 과정에 대한 확인도 없이 교우들의 축복 속에 당당하게 재혼하는 일도 흔하다. 통계 자료를 보면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이혼율이 아시아에서 최상위권이고, 세계 전체로는 중상위권에 속한다.
여기에다 가정의 개념을 본질적으로 왜곡하는 동성결혼에 대한 찬성 내지는 무관 심이 더욱 가정의 개념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정의를 내린 대로 순리를 역리로 바꾼 것으로 가증한 짓이다.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롬 1:26). 여전히 대세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양육 하는 것이지만 이 당연한 것이 이제는 거센 저항과 마주하고 있다. 결혼하지 않아도 아이가 있으면 정상적 가정과 동등하게 대우해주는 프랑스 정책을 모범 사례로 언급할 정도다. 혼외 출산으로 태어난 아이에게 의료와 교육 등의 권리를 제공해 준다는 것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가정을 사람들 마음대로 변형시키도록 조장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걱정스럽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서도 동성애를 용인 하고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려는 풍조까지 엿보인다. 이러한 현상을 방치하면 극단적 으로 가정이 해체 수순을 밟게 될지도 모른다.
요즘 주례 없는 결혼식이 대세라고 한다. 성도 자녀의 결혼식도 예외가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결혼 예배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 소중하게 지켜온 아름다운 전통적 가치관이 이제는 고리타분한 유물로 치부되고 있는 한 예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와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교회는 세속화를 경계해야 한다. 거룩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묵살하고 세상과 동화되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되면서 성도의 가정조차 근간이 흔들리는 현상을 맞게 되었다. 교회는 혼인과 가정의 성경적 의미를 가르쳐야 하고 출산이 하나님의 복된 명령임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세속화를 막는 일은 성경적 진리로 무장하는 데서 시작한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가정을 건강하게 세우는 일에 우리 마음을 모으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