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현 사모_경북노회 영남북부교회
영남북부교회는 2009년 9월 경북 안동에서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영기 목사의 고향인 영주와 가까운 안동에 정착하면서 부모님과 고향 지역을 섬기겠다는 소망을 품고 교회 개척과 함께 안동대, 동양대를 비롯한 지역 대학에서 한국기독학생회(IVF) 사역도 시작하였습니다. 또 교회 위치가 초등 학교 앞이어서 등교 전 어린이 매일성 경으로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이영기 목사는 개척 초기부터 시내가 아닌더 외진 시골로 가서 교회가 없는 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싶은 꿈이 있었습니 다. 사역 십여 년 동안 대학생과 장애인 등 많은 성도가 복음을 듣고 동역하 다가 각자 형편에 따라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면서 교회도 이전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안동시 임하면 살구꽃길 마을은 경북독립운동기념관과 안동포 마을 사이에 강을 끼고 자리 잡은 안동 동쪽의 고즈넉한 동네입니다. 주민 약 60가 구가 살고 있습니다. 2024년부터 이영기 목사와 시찰회 목회자들이 의기투 합하여 교회당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2009년 교회 개척을 위해 임대한 상가 건물을 수리할 때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고 협력해 주셨는데 두 번째 교회당 공사에도 힘을 모아주셨습니다.
건물 설계와 콘크리트 타설같은 전문 적인 기술이 필요한 작업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공정을 동료 목회자들이 틈나는 대로 와서 손을 보탰습니다. 땅을 파기 위해 함께 삽을 들었고 시멘트 타설 때는 목이 긴 장화를 신고 뻘밭 같은 시멘트 반죽에 들어가 써레질했습 니다. 특히 건축업 경험이 있는 당시 부노회장 백 목사님은 공사 초기부터 예배당 부지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마무리 공사까지 진두지휘해 주셨습니다.
조금 더 저렴하고 좋은 자재를 사기 위해 인맥을 동원해 시장조사를 하고 멀리 전라도까지 가서 자재를 사 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더운 한여름에는 시원한 밤에 헤드 랜턴을 착용하고 공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교회당 건축을 위해 목공과 한옥 건축 기술을 배운 이영기 목사는 교회당 내부에 편백을 두르고 모서리마다 몰 딩 작업, 바닥에 데코타일을 까는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손수 해나갔습니다.
적금을 해약하고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도 공사비가 턱없이 부족했기에 인건비를 아끼기 위한 이유도 있었지만, 평생에 마지막 교회당 건축일 수 있다는 마음,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공유할 공간 이라는 이유로 어느 한 부분도 소홀히할 수 없다는 욕심 아닌 욕심이 더 컸던 때문입니다.
2024년 4월에 시작된 공사는 11월쯤 공사를 마치고 준공 허가까지 받았습니 다. 자금이 부족해서 외부에 주방과 보일러실을 미처 짓지 못했지만, 다락방과 목회자실 1칸, 화장실 1칸, 본당 겸서재 1칸을 갖춘 18평 패널 건물이 완공되었습니다. 2025년 1월부터 새 건물 에서 예배드리며 방학을 맞아 집에 머물던 세 자녀와 함께 피아노와 책꽂이를 놓고 전등갓을 끼우며 새 예배당을 아기자기하게 꾸며나갔습니다. 올봄 정기 노회에서 교회 이전 청원을 할 예정 이었습니다.
의성에서 시작되어 며칠째 계속된 산불이 살구꽃마을을 덮쳤고 화마는 2025년 3월 25일 화요일 저녁 6시경부터 영남북부교회를 비롯한 마을 가옥 5 채를 불태웠습니다. 대피 방송을 듣고 피하던 중 이영기 목사의 트럭이 수로에 빠져 목숨까지 위태로울 뻔했지만, 지나던 차량의 도움을 받아 겨우 화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 목사는 자신도 남의 차를 간신히 얻어 탔지만, 대피 도중 길가에 쓰러져 있는 마을 어르 신을 외면하지 않고 “다 같이 살자”며 동승자들을 설득해서 할머니를 구하기도 했습니다. 차가 5대가 지나가도 아무도 안 세워주더라며 어르신이 울먹이셨 다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3월 26일 아침 교회로 가보니 건물 외벽 철판은 구겨놓은 종이처럼 우그러진채 겨우 서 있고, 건물 내부는 하얀 잿더미로 변해있었습니다. 컨테이너도 형태만 겨우 남아있고 내부 물건들은 고열로 모두 형체를 잃고 녹아내려 버렸 습니다. 불에 타서 약해진 철판이나 자재들이 언제 무너질지 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는커녕 가까이 다가가기도 몹시 조심스러운 상태였습니다. 이영기 목사는 손수 쌓아 올린 교회 당이 전소된 현장 앞에서 할 말을 잃은채 망연자실 서 있었습니다. 다행히 시찰회 목사님들이 아침 일찍부터 찾아와서 함께 곁을 지키며 힘을 주셨습니다.
“이 목사, 지금 그만두면 중퇴입니다. 우리 잘 버티고 졸업해야죠. 교회당 다시 지읍시다!” 입맛 없다는 이영기 목사를 강권해서 뜨거운 국밥을 먹이며 선배 목사님들이 응원해 주셨습니다. 교회당이 전소되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전국 에서 많은 분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고 계십니다. 직접 찾아와 손잡고 기도해 주시고 삼십 년 만에 연락이 닿은 후배는 전화기를 붙잡고 엉엉 울기도 합니다. 한 분 한 분 너무나 고마운 믿음의 동역자들입니다.
불탄 자리에서도 파랗게 새 쑥이 올라오고 도망갔던 새들이 날아와 지저귑 니다. 영남북부교회도 다시 힘을 내겠습 니다. 현재 공예배를 드릴 공간이 없습 니다. 가급적 마을을 떠나지 않고 예배 드리고자 합니다. 현재 마을 입구에 임시예배당을 설치할 수 있는 공간을 빌렸는데 기초공사와 임대기간 조율 등 해결할 부분이 남아있습니다. 뜻하지 않게 마을 안에서 유명(?)해지는 바람에 주민들이 교회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모든 과정이 순적하고 은혜롭게 진행되 어서 복음 전도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화재에 대한 손해 사정인 전수조사와 피해보상 절차도 언제 이루어질지 알 수 없어 마냥 우리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변 지역이 너무 큰 피해를 보아서 공무 수행에도 어려움이 많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어느 정도 피해보상이 이루어져야 철거와 건축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 기간이 일년이 될지 그 이상이 될지 모르겠습니 다. 다시 건축할 때는 불에 강한 자재로 사택을 포함한 2층 건물을 지으면 좋겠 습니다. 사택 옆에는 작은 게스트룸도 만들어서 도와주신 분들이 하룻밤 묵으며 교제하고 안동을 구경하고 가시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싶습니다.
화재에 대한 손해사정인 전수조사와 피해보상 절차도 언제 이루어질지 알수 없어 마냥 우리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변 지역이 너무 큰 피해를 보아서 공무 수행에도 어려움이 많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어느 정도 피해보상이 이루어져야 철거와 건축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 기간이 일 년이 될지 그 이상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건축할 때는 불에 강한 자재로 사택을 포함한 2층 건물을 지으면 좋겠습니다. 사택 옆에는 작은 게스트룸도 만들어서 도와주신 분들 이 하룻밤 묵으며 교제하고 안동을 구경 하고 가시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싶습니다. 육체를 가진 인간인지라 물리적 공간에서 살다 보면 믿는 자들도 병에 걸리기도 하고 사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에서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묻고 잠잠히 기다리며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믿는 자의 특권입니다. 또 어려움에 부닥친 형제자매를 위해 눈물로 위로할수 있는 것도 믿음의 공동체이기에 가능 합니다. 십여 년이 지나도 개척교회로 외로운 길을 가는 우리에게 따뜻한 사랑과 환대를 보내주신 많은 분들 덕분에 새힘이 나는 봄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감사 합니다. (2025.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