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미래
흔히 한국이 인구감소로 인한 축소사회에 진입했다고 말한다. 양적 축소가 곧 질적 또는 영적 축소를 뜻하지는 않지만, 여하튼 이런 현상이 우리에게도 성큼 다가온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이하 “합신”)의 신입생 미달과 이 때문에 생긴 문제들을 보자. 위기의식은 합신의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로 이어진다. 인터넷 강의나 야간학부를 신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학교 경제력과 목회자 공급에 작은 도움을 주겠지만, 일반교육과 다른 신학교육에 더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을 피하기 어렵다. 합신이 캠퍼스 생활을 중시하는 것은 경건 훈련, 동료의 단합, 교수의 인격적 면대면 교육, 교과과정 외의 지도 등 많은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앞의 주장에 따른 변화로 목회자의 숫자가 확보될지 모르지만, 신학교육의 질적 보장을 확신하기 어렵고, 시간이 흐르면 교단 안에 다른 출신들이 갈등을 빚는 치명적 몸살을 앓을 소지가 크다.
합신은 학생의 소수정예화로 가야 한다. 축소사회를 맞이하여 숫자는 줄어들지라도 학생은 인격, 학문, 정신, 영적 모든 면에서 확장을 경험해야 한다. 우선 수학능력을 갖춘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기 기독교와 초대 한국교회처럼 장차 목사가 여러 교회를 목회해야 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목회를 흉내만 낼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합신은 “성경적 개혁주의 신학사상에 입각한 장로회 신조에 의하여”(정관 제1조) 교육할 목적으로 세워졌다. 따라서 학생은 성경을 배우는 데 전념하여 원어의 고강도 학습을 통해 본문을 해득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또한 개혁파 신학으로 무장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 교리의 요점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한다. 또한 학생은 목회자의 인격과 경건을 함양해야 한다.
교수는 학생들과 면대면 만나는 실제 교사이기 때문에 그 책임이 매우 크다. 채용에서부터 교수직 수행 중에도 성경적 개혁신학에 맞는지 냉철하게 확인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모든 교수가 개혁파 신학을 항시 숙지하여 신학의 일치를 이루고, 교수 간에 그리고 과목 간에 소통과 교류와 협업이 형성되어야 한다. 교수는 자기 학위 분야 외에는 더 이상 발전이 없는 안일한 태도를 버려야 하며, 목회자를 양성하는 교사이므로 현학적인 지식을 자랑하는 대신에(특히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교과서적인 강의와 저술에 힘써야 한다. 교수는 교수직을 개인의 삶을 즐기는 도구로 여기지 말고 자녀를 기르듯이 애착심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시간을 많이 내주는 헌신이 필요하다.
합신 교육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은 총장은 교수진의 충직한 신뢰와 지지를 받아야 하며 교수진과 솔직한 대화와 소통을 나누어야 한다. 은퇴 교수의 경우 은퇴의 여유를 맛보아 느슨한데다가 신선함이 결여되기 쉽고 외부 인사는 국내 및 국제관계에서 신학교육 생리가 낯설기에, 총장은 현임 교수 가운데 나오되 자타가 명예로 여기는 전통을 따라 순조롭고 평화롭게 선임되는 것이 좋다. 신입생 미달과 경제난은 축소사회의 현상인 만큼, 해결책을 총장 한 사람의 능력으로 몰아가지 말고 합신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총장은 “성경적 개혁주의 신학사상에 입각한 장로회 신조에 의하여” 학교를 이끌 사명을 품고 학교를 폐쇄적으로 운영하지 말고 적극 개방하여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어야 할 것이다.
합신을 경영하는 주체는 ‘학교법인 자유학원’으로 되어있다. 이 법인은 “대한 예수교장로회 총회(합신)의 후원 하에”(정관 제1조) 교육하는 것을 목적으로 천명한다. 따라서 법인은 합신 경영에서 당연히 교단과 소통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교단의 공식적 이사 파송이든 무엇이든 교단과 법인 사이에 소통하는 창구가 열려야 한다는 것이다(이사의 임기는 확실하게 지켜야 한다). 또한 학생, 교수, 총장처럼 이사도 “성경적 개혁주의 신학사상에 입각한 장로회 신조”를 따르고 있는지 수시로 냉철하게 확인되어야 한다. 나아가 합신의 교육은 교수진 없이 불가능하므로 상호존중 가운데 이사회가 교수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암울한 지금보다 한결 밝아지기를 바라는 합신의 미래는 합신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감춘 것을 드러내시는’ 하나님 앞에서 다 함께 책임져야 할 몫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