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를 위한 책임 있는 어른이 필요합니다
정영찬 목사(경남노회 후세대교회)
연초엔 제법 묵직하게 느껴지던 달력이 여름을 지나고 가을을 지나면서는, 특히 11월이 되면 혹한을 견디기 위해 풍성했던 제 몸의 이파리들을 모두 떨구어내는 나무처럼 어느새 지나온 시간을 털어내고 달랑거리며 매달려 있다. 그래도 끝은 아니라서 뭔가를 시도해 볼만한 용기를 준다. 무엇보다 대입 수능일이 포함되어 있어 다음 세대를 향한 책임을 고민하는 달이다.
우리나라의 대입제도는 많은 변천을 거쳐 1994년부터 학생의 대학 진학 능력을 시험한다는 의미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시험’)을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다. 그러니 올해로 정확히 서른 살이 된 셈이다. 이전의 학력고사는 고등학교 과정의 과목을 모두 출제했기에 전 과목에 대한 부담감과 암기식 공부에 대한 부작용이 있어 통합적인 사고력을 갖출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 수능시험이다. 취지가 어떠하든지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의 심적 부담은 시험 앞에서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한때는 시험이 끝나고 나면 수험생과 관련된 극단적인 뉴스가 거르지 않고 등장했었다.
이즈음에서 교육과 관련된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의 속담을 되뇌어 본다. 그 문장은 몇 가지 교육의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우선, 아이의 육아는 개인이나 한 가정의 범위를 넘어서는 사회적 책임의 영역임을 내포한다(교육의 주체성). 여기에 한 아이를 위해 굳이 온 마을이 나서야 할 이유를 추정하면 아이의 인생은 본인이나 가정의 울타리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시 온 마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교육의 결과와 영향력). 무엇보다 한 인생의 성장에는 다양한 인간관계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반영되어 있다. 아이가 가진 선천적 재능이 적합하게 발현되기 위해서 앞선 세대의 다양한 경험, 다양한 유형의 기질, 다양한 인생 모습 등의 후천적 배경도 중요하다(교육의 과정과 내용). 또한 인생은 고립된 실존이 아니라 여러 관계 속에서 질서를 배우고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당연한 교훈까지 포함되었다(교육의 사회성).
이상의 내용을 통해서 교육을 간략히 정의하자면, 인생 형성적 활동과 과정(a formative activity and process)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곧 교육은 다른 인생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으며 다음 세대를 형성하는 사회적, 역사적인 일이다. 그러니 교육은 실험되거나 막연한 추론만으로 접근하기엔 그 결과가 엄청 무거울 수밖에 없으므로 늘 신중해야 하고 엄숙해야 한다. 특히 자기의 말과 행동에 대하여 정직하게 책임을 지는 어른이 있어야 한다. 한자어로 선생(先生)은 앞선 삶을 살아가되 그렇게 책임을 질 줄 아는 어른을 일컫는 표기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꾸지람 보다 자기의 삶을 성찰하며 걸어가는 앞선 세대가 먼저여야 한다.
잠언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않으리라고 교훈한다(잠언 22:6). 마땅히 행할 길이란 창조주이시며 통치자이시고 심판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어진 인생을 그분의 부르심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지 않겠는가? 늙어서도 치열한 싸움터를 향해 번쩍 손을 들었던 갈렙처럼, 복음을 증거하다 투옥된 현실에서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고난을 받으라고 권하는 바울처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어른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의 사회가 땀 흘린 수고를 격려하며 정당하게 대가를 지불하고, 비굴하게 얻는 기회와 결과보다 정직한 실패를 더욱 따스하게 안아주며, 이 땅 너머의 영원을 소망하도록 세상의 가치를 상대화할 줄 아는 품격을 갖추도록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