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의 계절, 감사의 계절
김학인 목사(본보 편집국장, 기좌리교회)
추수하는 계절이다. 농촌에서는 가을걷이로 한참이나 바빴다. 이미 벼 추수는 거의 끝났고, 다른 농작물들을 거두어들이는 분주함도 점차 끝나간다. 곧 겨울 김장을 위해 또 바빠지겠지만 말이다. 이맘때는 감사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농촌 교회의 추수감사주일은 실제다. 보통 도시에서는 농산물을 사서 예배당을 장식하는 것과 달리 농촌에서는 직접 농사해서 얻은 곡식과 채소와 과일 등으로 장식한다. 추수감사주일은 섭리 안에서 일한 대로 결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기회요, 1년 동안 땀 흘려 농사지은 사람들의 수고를 알아주는 날이다.
교회가 추수감사주일을 절기로 지키는 것에 관해 이견이 있다. 추수감사주일은 미국 청교도들의 문화적 전통에 따른 것일 뿐 절기로 지켜야 할 이유는 없다고 주장한다. 또 추수감사주일의 근거를 구약의 절기에서 찾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구약의 모든 의식과 제사법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골 2:16-17, 히 9:10). 주의 날만을 유일한 절기로 보거나, 성육신을 시작으로 그리스도의 구속사역과 관련한 절기만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도 한다.
그런데도 굳이 추수감사주일을 절기로 지켜야 할까?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제21장 5절은 ‘경우에 따라 드리는 감사’를 언급한다. 때와 기회가 있을 때 그것이 거룩하고 경건한 방식으로 실행되어야 한다고 부언한다.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 제13장은 교회가 주의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 날을 정하여 지키는 것은 합당한 일이라고 한다. 이뿐 아니라 주일의 중요성을 무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성도들의 신앙 훈련과 경건의 강화를 위해서 교회가 임시적이고 특별한 절기를 선택할 수 있다. 물론 각 지역과 교회에 따라서 다양할 수 있다. 그래서 추수감사주일은 정한 날짜에 일제히 지키는 다른 절기들과 달리 추석 전후, 혹은 11월 첫째 주나 셋째 주 등 다양한 날을 택하여 지키기도 하고 아예 지키지 않기도 하는 것이다.
농촌의 경우 추수를 마치는 시기에 특별한 날을 정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하는 기회로 추수감사주일을 지킬 수 있다. 더 나아가 모든 신자는 세상의 모든 일, 심지어 우리가 경험하는 고난조차도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믿기 때문에,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고백하는 시간으로 추수감사주일을 지킬 수 있다. 비록 미국 청교도들의 전통에서 왔더라도 그 절기가 신앙 공동체에 유익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계기가 된다면, 이러한 문화 전통을 신앙 안에서 받아들여 기념할 수 있다. 그 감사의 내용은 농작물의 수확에 한정되지 않고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포함하여 우리의 삶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과 은혜로까지 확장된다.
추수감사주일은 단순히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이웃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날이 될 수 있다. 그동안 하나님께 받은 복을 되돌아보며 믿음의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을 높이고, 나아가 사회적 약자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추수하는 계절, 감사하는 계절이다. 어떤 특정한 날을 중요하게 여긴다기보다 결실의 계절을 주신 하나님께 온 성도가 감사하며 받은 은혜를 기뻐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올해의 추수감사주일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