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칼럼] 성전과 하나님 나라_김진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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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과 하나님 나라

김진수 교수(합신 구약신학)

 

성전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시기 위해 임재하시는 거룩한 처소이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겼다. 여호와 앞에 성회로 모였으며(신 16:8), 각종 제사를 드렸으며(신 12:6; 대하 7:12), 경배와 감사와 찬송과 기도를 드렸다(대상 16:29; 23:30; 대하 6:40). 구약에서 성전은 언제나 제의의 중심에 있었다. 이렇듯 성전이 제의(예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보니 성전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제의에 머무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제의는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예배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예배는 성전의 중심 기능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성전은 통상적인 의미의 제의로 다 설명되지 않는 특성을 갖는다. 제의를 포함하면서도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의미를 지닌 것이 성전이다. 성전은 하나님이 온 세상의 왕이심을 드러내며 하나님 나라를 표상한다.

성전이 하나님의 왕 되심을 표현하는 왕국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은 성전과 관련된 여러 사항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성전을 가리키는 말 중에 하나가 ‘헤칼’이다. 솔로몬 성전은 종종 ‘헤칼’로 불린다(왕하 23:4; 24:13; 대하 26:16; 29:16; 렘 7:4; 24:1; 51:11 등). 포로기 후의 소위 스룹바벨 성전도 ‘헤칼’로 불린다(느 6:10, 11; 슥 8:9). ‘헤칼’의 우선된 의미는 왕의 궁전이다(왕상 21:1; 왕하 20:18; 시 45:15[16]; 잠 30:28; 호 8:14; 암 8:3 등). 그러므로 ‘헤칼’이 성전을 가리킬 때 전면에 나서는 의미는 하나님의 왕궁이다(사 6:1 참고). 구약에서 하나님의 칭호로 왕을 뜻하는 ‘멜렉’이 사용된 경우가 42회이다. 그 외에도 구약에는 하나님의 왕 되심을 나타내는 수사나 표현들이 많다. 따라서 ‘헤칼’을 하나님의 왕궁으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성전은 하나님의 왕궁이다. 하나님은 성전에서 통치하시는 왕이다.

성전의 왕국기능을 드러내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언약궤이다. 언약궤는 성전의 지성소에 속한 물건으로 성전의 가장 중요한 기물이다. 언약궤는 이따금 “그룹 사이에 계신/좌정하시는 만군의 여호와”라는 문구로 보충 설명이 된다(삼상 4:4; 삼하 6:2). 이 문구에서 ‘그룹 사이’는 언약궤에 연접된 속죄소 위의 공간을 가리킨다. 따라서 속죄소 위의 공간은 여호와께서 왕으로 좌정하시는 장소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속죄소의 위의 ‘그룹 사이’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거나 말씀하시는 장소로 묘사되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1-22; 민 7:89 참고).

이 말씀은 속죄소 위의 ‘그룹 사이’가 어떤 곳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쳐준다. 그곳은 여호와께서 왕으로 좌정하시는 보좌이다. 속죄소 뿐만 아니라 언약궤 또한 여호와의 보좌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속죄소는 언약궤와 하나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3:16-17은 명백하게 여호와의 보좌와 언약궤를 동일시하는 본문이다. 이 본문은 예루살렘이 언약궤를 대체하는 새로운 여호와의 보좌가 될 날을 바라본다: “… 사람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 예루살렘이 그들에게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 성전을 ‘보좌의 처소’라고 부르는 에스겔 43:7에도 언약궤를 여호와의 보좌로 간주하는 관점이 나타난다. 언약궤가 여호와의 보좌라는 사실은 성전을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여호와께서는 성전 지성소의 보좌에서 다스리시는 왕이시다. 성전은 여호와의 제왕적 통치를 통해 세워지는 왕국 곧 하나님 나라를 표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