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개혁신학의 토대 위에 교회를 바로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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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의 토대 위에 교회를 바로 세우자

우리 교단은 성경이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오직 성경만이 신앙과 삶의 유일한 규범이라고 믿는 개혁주의 신학을 지향한다. 교회론도 당연히 개혁주의적 신학의 토대 위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 칼빈이 기독교강요를 쓰면서 1부:성부, 2부:성자, 3부:성령, 그리고 4부:교회로 구성하고, 교회를 성도의 어머니라고까지 언급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교회는 그만큼 우리 신앙에 있어서 중요하다.

그런데 흔히 교회론을 실천신학으로 분류하면서 신학적 토대를 소홀히 하고 방법론으로 치우치는 현실 속에서 우리 교단의 교회들이 여전히 개혁주의 신학의 바탕 위에 서 있는가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주님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과 부활, 그리고 주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전파하기 위해 이 세상 한 가운데 존재해야 하는 교회가 세상 한 가운데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세속화의 위협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하나님과 맞섰다가 쫓겨난 사탄이 교회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죄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일을 순탄하게 감당하도록 내버려둘 리는 만무하다.

이런 영적 상황 속에서 우리가 개혁주의 신학을 기본으로 건강한 교회를 세우고 섬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리스도가 없는 기독교를 설파하는 ‘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고 한 어느 신학자의 말을 우리는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 현대 사회가 미국을 중심으로 실용주의로 경도되면서 본질과 과정보다는 결과에 집착했고, 교회도 이런 흐름에서 결과물에 집착하면서 세속화되다가 영적으로 타락한 증거를 들자면 끝이 없다. 어떤 식으로 교회를 운영하건 사람만 많이 모이면 치명적인 결함이 의심돼도 다 덮고 넘어가는 현상들을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보고 있다. 우리나라 장로교회는 ‘순복음 장로교회’라고 하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를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성도의 본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도가 모인 교회는 당연히 하나님 우선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결과론에 집착하다 보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의 편의가 우선이 되고, 교회는 주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된다. 우리는 주님이 교회의 머리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교회의 머리가 주님이 아니라 목사나 장로, 혹은 어떤 유력한 세력일 수 있다.

이런 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개혁주의 신학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이 있어야 한다. 자칫하면 우리는 신학교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공부를 소홀히 하고, 점차 나이가 들고 관록이 쌓이면서 지식은 흐려지고 요령만 느는 목회자가 될 수 있다. 일반 직장인들은 끊임없이 직무 연수를 받고 시험에 통과되어야 계속 자기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목회자들의 경우는 신학교 졸업과 동시에 성장을 위한 과정이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 사항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많은 교회들이 ‘담임목사의 목회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제각각 운영된다. 이런 현상은 같은 개혁주의 신학을 지향하는 우리의 목회 현장에서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방법론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성들을 살피지 않고 어떤 것을 도입부터 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효과가 있는 것이라고 보인다고 해도 그것이 성경적으로 올바른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언젠가는 문제의 실체를 드러낼 것이다. 우리의 짧은 생각으로 성경보다 앞서 나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개혁주의 신학을 지향한다면 우리의 교회론은 당연히 개혁주의 신학의 바탕 위에 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