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헌상)에 대한 죄송함과 감사함
최우준 목사(라이프교회)
얼마 전 아이들이 십일조를 하겠다고 봉투에 이름을 적고 있는 모습을 보다가 아내와 빵 터졌다. ‘십일조’를 ‘11조’로 적고 있는 온유와 그걸 보면서 그대로 따라 쓰는 지유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십일조’를 ‘11조’로 쓰는 아이들을 보면서 웃기기도 했지만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십일조란 말을 아이들이 써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실, 라이프교회는 작년까지 헌금봉투에 이름을 적지 않고 무명으로 헌금을 드렸다. 교회를 개척하며, 헌금을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함이나 믿음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무명으로 정직하게 그리고 기쁘게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라고 고백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작은 규모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성도들의 헌금 내역을 알게 된다면 성도 한 명 한 명을 ‘돈’으로 보게 되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그런 결정을 내리고 칠 년을 지나왔다. 그뿐 아니라 2019년 예배당 장소를 옮길 때 “교회의 재정이 필요합니다. 함께 마음을 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한 문장을 제외하곤 헌금에 대한 내용이나 설교도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교회의 많은 가족들이 “왜 목사님께서는 헌금에 대하여 가르쳐 주지 않느냐?”라는 건의(?)를 여러 차례 받으며 성도들에게 얼마나 죄송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처음으로 성도들에게 재정보고를 하고, 그동안 무명으로 헌금을 한 이유와 바른 헌금의 자세에 대하여 굉장히 낯설게 설명했다. 그리고 교회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믿음의 태도에 대하여 처음부터 바르게 가르치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인사와 함께 “그럼에도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동일하게 무명 헌금을 원칙으로 세우고 헌금 이야기는 전혀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라이프교회를 개척하기 전 많은 사람들이 ‘과도한 헌금’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것을 보았다. 물론 ‘헌금’은 성도의 귀한 신앙 고백이다. 그리고 목사가 가르쳐야 할 중요한 책임이다. 헌금은 우리에게 허락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신앙고백이고, 동시에 내가 속한 교회 공동체의 소중함과 가치를 알기에 함께 세워나가는 성도의 마땅한 책임이다.
하지만, 예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고, 교회 공동체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헌금은 ‘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특별히 라이프교회는 ‘가나안 성도’들의 비중이 높아서 헌금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선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래서 나에겐 그 시간과 과정이 필요했다.
또 라이프교회 가족들에게 그 은혜의 시간과 과정을 선물하고 싶었다. 덕분에 교회 재정은 항상 마이너스였고, 솔직히 지금도 여전히 서울이라는 고정지출이 큰 지역에서 개척교회가 자립하기엔 힘든 상황이다.
그뿐 아니라, 청년들과 가나안 성도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 성도들은 점점 많아지는데 헌금은 거의 그대로이고 오히려 지출이 커지는 굉장히 신비한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프교회 가족들이 자발적으로 헌금봉투에 이름을 적어 모든 것이 은혜임을 고백하고, 교회 공동체를 세워나가기 위해 보여주는 귀한 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마음이 쓰인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성도들은 그냥 헌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안해하지도 말고, 부끄러워하지도 말고, 그냥 담대하게 일단 잘 먹고 잘살았으면 좋겠다. 아니, 오히려 힘든 상황을 교회 공동체에 말하며 도움을 청하면 좋겠다. 그래서 주님께 드려진 헌금이 형편이 어려워진 가족들을 위하여 기쁘게 사용되면 좋겠다. 유난히 오늘은 더 교회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또 미안하고 감사하다.
(라이프교회 홈페이지, <라이프교회 이야기>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