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 세계 교회사 18] 초대교회 교부(敎父)_박상봉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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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교부(敎父)

박상봉 교수(합신, 역사신학)

 

‘아버지’(πατηρ)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교부‘는 사도들 사후에 사도들의 가르침을 계승하면서 초대교회 신앙의 연속성과 일치를 수호하는 역할을 감당한 교회의 지도자이다.

그리고 ‘교부’는 신앙에 대해 의심스러운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 확실한 증인으로 내세울 수 있는 초대교회의 스승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교부들이 모든 점에서 오류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교회의 지도자이자 스승으로서 교부들의 가르침은 오직 성경과 사도들의 가르침에 근거한 신앙 규범과 일치할 때만 합법성을 갖기 때문이다. 특별히, 2세기 이래로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아버지(교부)’라는 칭호가 붙여졌다는 여러 문헌이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325년 니케야 공의회에서 처음 신앙의 수호, 변증, 가르침 등에서 큰 업적을 남긴 교회의 지도자들을 ‘아버지’ 혹은 ‘거룩한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경건하고 올바른 신앙을 가진 초대교회의 감독들, 교회의 교사들이나 신학자들이 ‘교부’로 이해되었다.

‘교부’의 기준

교회의 역사 속에서 “어떤 인물들을 교부로 인정할 것인가?”를 확정하는 것은 단순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교부’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기준이 충족되어야 했다.

● 교리의 정통성: 교부들은 신학적이거나 교리적인 면에서 바른 신앙을 가르치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들의 가르침이 아무런 오류도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가르침에 몇몇 오류가 있었다고 해도 ‘정통 교리’ 형성에 기여한 사람들을 ‘교부’로 인정한 것이다.

● 초대교회 시기의 활동: 교부들은 신약성경에 기록된 사도들과 그들의 동역자들의 활동이 끝난 후에 1세기 말부터 초대교회의 끝인 6세기 말까지 활동했던 교회 지도자들을 지칭한다. 물론, 몇몇 교부들은 ‘정통 교리’ 형성에 기여한 공로에 따라 8세기까지 속한 인물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750년에 사망한 다마스쿠스 요한을 생각할 수 있는데,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에 관한 기독론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 삶의 거룩성: 교부들은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통해서 신자들의 모범이 되었던 인물들이었다.

● 교회의 승인: 교부들은 교회의 역사 속에서 가르침과 삶에 있어서 초대교회로부터 ‘교부’로서 권위를 인정받은 사람들이었다.

교부의 분류

초대교회의 교부들은 시대적이고 활동적인 특징에 따라 크게 네 부류로 구분될 수 있다: 속사도 교부들, 변증가들, 니케야 공의회(325) 이전의 교부들, 니케야 공의회 이후의 교부들.

● 속사도 교부들: 속사도 교부들은 사도들의 제자로서 ‘사도의 뒤를 잇는다’라는 이해 속에서 ‘속사도’라는 명칭이 붙었다. 그들은 ‘사도적 교부’ 혹은 ‘후사도 교부(後使徒 敎父)’라고도 지칭하는데, 사도들과 교분을 가진 교부들이라는 의미이다. 물론, 기준에 있어서 반드시 사도들과 접촉이 있었던 것을 필수조건으로 하지는 않는다. 특별히, 속사도 교부들은 사도적 가르침의 계승자와 수호자라는 의식이 강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고난의 때에 교회가 흩어지거나 무너지지 않도록 교회 조직을 유지하고 체계화시키는데 노력을 뿐 아니라, 신앙 정신에 따라 순교의 모범을 보였던 인물들이었다. 로마의 클레멘트, 이그나티우스, 폴리갑, 헤르마스, 파피아스, 그 밖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디다케』, 『바나바서』, 『클레멘스 2서』 등을 쓴 인물들을 생각할 수 있다.

● 변증가들: 유대교는 기독교가 자신들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며 이단시하였다. 그리고 교회의 확산과 관련하여 위기의식을 느낀 로마의 황제들은 칼을 들고 성도들을 박해했으며, 로마 제국의 지식인들은 붓을 들어 교회를 비방했다. 이러한 유대교와 이방인들의 이론적 공격으로부터 기독교를 변증한 교부를 ‘변증가’라고 부른다. 이 변증가들은 대략 2세기 초중반부터 3세기 초까지 활동했는데 기독교의 진리를 설명하고, 이를 통해서 기독교가 이교(異敎)보다 월등한 ‘참된 구원의 종교’임을 알렸다. 특별히, 변증가들은 당시 이방 지식인들에게 기독교를 가장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철학의 옷을 입혀 소개했다. 물론, 이러한 변증적 과정에서 헬라철학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기독교를 ‘헬라화된 기독교’, 즉 ‘변형된 기독교’를 만든 부작용도 있었다. 저스틴, 아테나고라스, 아리스티데스, 안디옥의 데오빌로, 사데의 메리톤 등을 떠올릴 수 있다.

● 니케야 공의회(325) 이전 교부: 2세기 중후반부터 4세기 초반인 325년 니케아 공의회 이전까지 활동했던 교부들은 교회 안에서 이단들을 대항하고, 기독교의 교리적 체계를 세우기 위해 크게 공헌한 교부들이다. 대표적 인물들은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오리겐, 키푸리안, 락탄티우스 등이다.

● 니케야 공의회(325) 이후 교부: 기독교의 교리적 체계를 세운 사람들이다. 특별히, 이 시기에 삼위일체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등에 있어서 신학적 정립과 발전을 이루었다. 아타나시우스, 갑바도기아 세 교부: 바실, 나지안의 그레고리, 니싸의 그레고리, 암브로시우스, 크리소스톰, 제롬, 어거스틴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정리하며

초대교회는 크게 두 가지 어려움에 항상 직면해 있었다. 하나는 외부적 박해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부적 이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은 믿음의 지도자들, 즉 교부들을 부르시고 세우셔서 교회를 보호하셨다. 이 교부들의 헌신 속에서 기독교는 지금까지도 견고하게 유지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