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 장애인주일을 위하여_홍성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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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주일을 위하여

홍성수 목사(천안밀알선교단 단장)

 

하나님나라의 현재성과 장애인 선교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그 나라는 누구나 참여하는 나라이며 그 나라에서는 병든 사람도 장애가 있는 사람도 치유가 되어 누구나 건강하고 자유한 나라임을 드러낸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직접적으로 어디를 가나 병자나 장애인들을 만나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치유하며 그들이 병에서 장애에서 자유하게 하셨다. 지금 우리 시대에는 예수님처럼 치유능력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하나님나라의 공동체인 현대 교회에서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난한 사람들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그 사랑이 전해져야 한다.

우리 시대의 하나님나라의 현재성은 그 하나님나라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든 누구에게나 하나님나라가 임하였으며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외쳐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나라의 공동체로서 더 큰 은혜와 축복으로 임할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날 교회 안에 장애인들이 거의 없고 함께 예배드리지 못하는 현상은 안타깝고 하나님나라의 공동체로서 온전하지 못한 현상이다. 많은 교회에서 지역 장애인들이 함께 살고 있음을 잘 인지하지 못한 이유도 있다. 나아가 장애가 있는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만 생각했지 그들도 죄용서 받고 구원받아야 할 하나님의 자녀로 인식하지 못한 이유도 있다. 만일 그들에 대한 바른 인식을 한다면 교회는 당연히 그들에게도 전도하며 함께 예배드리며 하나님 일의 동역자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장애인주일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장애인주일을 통해 장애인을 섬기는 사역을 하고자 매년 4월 20일에 지켜지는 장애인의 날을 기점으로 한국교회에서도 그 주간(4월 3째 주일)의 주일을 장애인주일로 함께 지킨다. 그러나 아직 한국교회는 ‘장애인주일’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없거나 어떻게 장애인주일을 지켜야 할지 난감해 하기도 한다. 그리고 장애인주일은 부활주일과 겹치곤 해서 후순위로 밀려나기도 한다.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장애인들을 돕기’위한 하나의 행사 정도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행사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무관심하게 된다. 장애인들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실상 교회의 행사를 위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래서 장애인주일은 없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그러나 그보다는 오히려 교회가 가장 잘하는 ‘이웃사랑 전도’를 잘 살려서 장애인주일도 지켜나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장애인주일은 장애인 전도주일로

장애인주일은 워낙 교회가 장애인들에게 관심이 없다보니 그 때라도 아니 그 장애인주일부터 장애인들에게 관심을 갖자고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따라서 장애인주일은 ‘장애인 전도’를 위한 장애인주일이어야 하며 교회 주변의 장애인들에게 사랑으로 전도하는 주일이며 그들을 초청해 함께 예배드리며 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시간들이어야 한다. 교회는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실천한다. 교회가 제일 잘 하는 것이 새 신자 전도와 양육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가르쳐 신앙생활을 잘 선도하는 것이다. 그처럼 지역 장애인들도 초청하여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장애인 주일로 지킨다면 더욱더 의미 있는 장애인주일이 된다.

예수님의 사랑, 하나님나라의 자녀로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 중 가장 많이 드러낸 사랑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어딜 가시든 장애인들을 만나고 치유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보이셨다. 눅 4:18-19에 보면,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이사야 61:1-2 말씀을 읽으신다. 그 말씀은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은혜의 해를 전파하시러 오셨다는 말씀이다. 여기서 그 가난한 사람들 중에 신체적으로 가장 가난한 눈먼 자(장애인)에게 다시 보게 되는 복음이 전파된다는 말씀이 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전반적으로 장애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것임을 선포하신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은 그 후 장애인들을 많이 만나면서 치유하며 복음을 전하셨다.

또 눅 7:22에 보면 요한의 제자들이 ‘오실 그이가 당신이신지’ 질문할 때 장애인들에게 복음을 전파되는 것을 증거로 보이면서 예수님은 장애인선교를 통해 복음을 전파하고 있음을 말씀하셨다.

이렇게 예수님의 복음 전도는 그 어떤 사역보다 장애인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드러냈다. 장애인들에게 절실하고 꼭 필요한 치유를 하셨지만 사실은 그것만이 목적은 아니었다. 장애인 당사자들과 장애인 치유 사역을 본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심을 드러내려 하셨다.

장애인 선교의 진정한 의미는 장애인들을 도와주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도와 장애인 자신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하고 복음을 듣게 하고 하나님 나라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려는 것이다.

장애인 선교는 장애인들도 함께 예배하게 하는 것

오늘날도 예수님의 이러한 장애인 선교를 통한 복음전도는 교회가 충분히 할 수 있고 또 당연히 해야 한다. 가장 쉬운 일은 교회 주변 장애인들도 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장애인들을 만나 치유하신 것처럼 교회(교회는 어느 지역에나 있기에)는 주변의 장애인들을 파악하고 그들을 찾아가 그들도 예수님의 사랑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장애인들도 교회 안으로 들어와 함께 예배하며 교제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장애인들을 만나 무엇을 원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시고 그들을 치유하셨다. 장애인들과 공감, 소통하며 치유하신 것이다. 교회는 장애인들의 필요와 원하는 바에 공감할 필요가 있다. 안타깝지만 현대 교회 안에는 장애인들이 거의 없다. 장애인들은 스스로 올 수 있는 상황이 안 된다. 누군가 찾아가 만나서 어떤 이유 때문에 교회 올 수 없는지 파악하여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에 먼저 공감하고 그 필요에 맞게 교회가 지원해야 한다. 그 필요를 알면 교회는 함께 기도하며 하나하나 준비하면서 진행해 수 있다. 이것이 교회의 사랑의 마음이다. 사역자들과 성도들에게 이러한 마음이 있으면 교회는 충분히 장애인들도 함께 예배드리도록 노력하게 된다.

장애인 선교는 지금 현재 교회가 가진 자원으로도 충분하다. 우선은 교회 안에 장애 성도들이나 가족 중 장애인들부터 어떻게 교회를 나오고, 예배드리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예배를 잘 드리고 교회 안에서 교제케 할지 살펴서 필요한 부분을 지원하면 된다. 그럴 경우 지원팀을 구성하여 전반적 지원을 운영한다면 교회에서도 큰 부담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물질적 도움보다는 실제적으로 장애 성도들에게 신앙적 도움을 주는 주일의 개념으로 장애인주일을 섬기면 하나님나라의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경험하는 교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