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빈부격차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_강승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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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격차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강승주 목사(섬기는교회, 본보 논설위원)

 

이 시대에 빈부격차 문제만큼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또 있을까. 여느 나라와 같이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예산과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데 애를 쓰지만 쉽지 않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타인의 어려움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교회는 어려울 때 자신의 재산을 팔아 헌금함으로 어려운 성도들과 더불어 살았던 아름다운 역사를 갖고 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 4:32).
그런데 이 사건은 오래 그리고 빈번하게 나타나진 않았다. 아무리 교회라도 죄인인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여서 인간의 한계를 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단 한 번이었다고 해도 그 일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회는 이 점을 눈 여겨 보고 그 사건이 재현될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우리에게는 생각 이상으로 큰 문제가 있다. 빈부격차 문제는 분명 교회 안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함께 예배드리며 성도의 교제를 나누고 있지만 삶의 형편은 천차만별이다. 매달 사글세를 마련하느라 전전긍긍하는 성도들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 그리고 이 문제는 교회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난한 교회가 있는가 하면 재정이 넘치는 교회도 존재한다. 어떤 목사님은 사택에 승용차에 그리고 상여금을 포함한 넉넉한 사례비와 활동비를 받지만 어떤 목사님은 받을 수 있는 사례비가 없거나 받아도 턱없이 모자라 공공근로 등을 통해 몇 푼이라도 벌어야 살 수 있다.

교회조차 이런 상황에 있으면서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무엇인가 해 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이 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할 수 없다고 두 손을 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수년 전 노회 안에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무엇이든 해 보자고 제안했다. 그때 묵살될 뻔했지만 한 회원이 어렵게 제안된 것이니 대안이 없다고 하지 말고 위원회를 만들어 연구해보자고 한 것이 계기가 되어 노회 안에 ‘강소교회세우기위원회’가 조직되었다.

많은 논의 끝에 목회자들의 생활 안정을 돕는 차원에서 목회자 가정을 위한 일자리 창출과 열악한 예배당 환경을 개선을 위한 인테리어 사업으로 전등 교체와 수도 시설 보수 공사 등이 실행되었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여러 교회들을 몇몇 교회와 개인들의 헌금과 여러 목사님들의 자원봉사로 섬김을 받을 수 있었다. 재정이 아주 어렵지 않은 교회는 자재 구입은 교회가 하고 목사님들은 자원 봉사만 했다. 이 일에는 장로님 한 분의 헌신적인 수고가 있었다.

이런 활동이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거의 단회적인 것이고 임대료 지원 같은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도움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다고나 할까. 이런 섬김이 귀하기는 하지만 빈부격차 해소에 일조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확실히 사람이 무엇을 한다고 해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지금도 정부 담당 부처를 비롯해서 수많은 사회단체와 뜻있는 독지가들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애쓰고 있다.

모두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 위기에 빠진 사람들에게 도움의 기회가 제공되고 있어서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곳이라는 말이 들려오기도 한다. 교회는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가 생각해 본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된다는 것이다. 빈부격차 해소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셔야 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통해 일하신다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하는 일들은 분명 아주 작은 일들에 지나지 않는다.

엘리야의 경고대로 수년간 혹독한 기근이 있었고 엘리야가 기도하자 폭우가 내렸다(왕상17:1-18:46). 이것은 사람의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왕상 18:44). 우리가 요란하게 운동을 벌인다고 해서 빈부격차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이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애쓴다면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든 당신의 백성을 살리시는 역사를 일으키실 것이라고 믿는다. 작은 실마리라도 보이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