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계시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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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와 사랑

하나님께서 베푸신 복의 절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구속의 아버지로 모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의 본질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연합(union)과 교제(communion) 안에 있다. 하나님은 영원한 선택과 사랑 안에서 허물과 죄로 죽은 죄인에게 내려와 자신을 계시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타락 전이나 타락 후나 언제나 계시를 통해 언약을 맺으시며, 관계를 이루신다. 타락 전에는 행위언약을 통해, 타락 후에는 은혜언약을 통해 계시를 주시고 그 계시를 통해 자신을 알리시고 관계하셨다.

타락 후 하나님께서는 특별계시를 통해 은혜언약을 맺으시고 구원을 베풀어주신다. 성경 66권이 완성된 이후에, 이제 하나님께서는 유일하고 충족한 성경이라는 특별계시를 통해 자신을, 자신의 뜻을, 그리고 구속하신 일과 그 안의 복들을 알려주신다. 성도와 교회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그분께 속한 복들을 알고, 확신하고, 수용하므로, 하나님과 연합하고 교제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갖는다는 의미는 단지 사변적 지식의 소유나 축적이 아니다. 그것은 성경으로 계시하셔서 당신을 알려주시고, 내어주시는 사랑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이 지식은 인격적, 관계적이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와 언약이란 방식으로 관계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경과 성령의 조명으로 구원을 베푸시는 계시 행위는 진정한 사랑이다. 낮은 곳에 임하여 자신을 계시하셔서 사랑을 나타내시므로, 성도들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당연히 이 계시에 대한 응답이다. 계시로 낮은 곳에 찾아와 베푸시는 사랑에 독경과 설교로 접한 말씀의 의미를 배우고, 깨우친 말씀을 마음에 기억하여 삶 속에서 살아내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다. 말씀에 신앙과 순종으로 응답함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다. 따라서 우리의 삶 속에는 예배와 묵상이 있어야 한다. 예배 때 선포되는 말씀을 받으며 삶 속에서 그것을 묵상하고 깨우쳐 내 삶에 영향력을 끼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일이다.

공예배는 대체로 두 가지이다. 오전에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선포하시는 의미로 성경을 강해 설교하고, 오후에는 성경에 대한 교회의 응답으로서 신앙고백을 강설한다. 말씀을 사랑하는 교회는 신앙고백을 소중히 여긴다. 성경과 교리는 분리되지 않고 인과론적으로 연결된다. 신앙고백들과 교리는 성경에 대한 가장 공적이고 검증된 말씀에 대한 몸(공교회)의 인식이고 고백이기 때문이다.

교리에는 바른 교리와 왜곡된 교리가 있을 뿐이다. 성경에 바르게 근거한 교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약이고 체계와 수단이다. 성경을 배운다는 의미는 그러한 교리를 배운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항상 바른 교리는 성경을 바로 해석하고 깨우치게 하며, 왜곡된 가르침에 안 빠지도록 성경의 매뉴얼 역할을 한다. 성경은 읽는 순간부터 해석하고, 그 결과로서 교리를 표현하게 만든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교회는 고백한다. 모든 교리가 참 교리는 아니어도 교리가 없을 수는 없다. 혹자는 오직 성경만 따르기 때문에 교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철저히 자기 기만적이다. 성경을 읽으며 해석하지 않고 그 결과로서 교리를 갖지 않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교회의 교리냐 사적인 교리(견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성경을 읽는 순간 모두가 성경을 해석하고 자신의 교리를 갖는다. “성경을 읽으니 이런 뜻이더라”라는 말 자체가 교리적 발언이다. 그러므로 바른 교리를 세우고 배우는 일은 성경을 바르게 깨우치는 데 필수적이다. 성경을 사랑한다면 바른 신앙고백과 교리를 사랑한다.

하나님의 계시 사역은 사랑이란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와 교회는 말씀에 응답하여 성경을 바르게 읽고, 듣고, 깨우쳐 그에 응답하는 예배와 삶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성경은 말한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