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우리는 잘 시작한 것일까?

0
60

우리는 잘 시작한 것일까?

유럽의 어느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수영을 연습하는 장면이다. 출발선에 한 줄로 늘어선 아이들이 잔뜩 허리를 굽히고 기다리고 있다가,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개구리처럼 두 다리를 쭉 뻗으며 일제히 물속으로 뛰어든다. 아직 물속에서 다 올라오지도 않은 아이들의 귓속으로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가 매정하게 파고든다. 모두 나와서 다시 일렬로 출발선에 서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아이들의 입이 오리새끼처럼 쭉 삐져나온다. 몇 미터라도 헤엄쳐 가보면 좋으련만. 아이들의 원망스런 눈초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몇 번이고 속절없이 출발 연습이 반복된다. 제대로 출발하지 않으면 결국 끝도 망칠 공산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해를 잘 시작한 것일까? 새해를 맞이하면 우리는 매번 어김없이 첫 날과 첫 주간과 첫 달을 시작한다. 그리고는 어찌 어찌하다가 한 해를 다 보내고 기어이 연말에 이른다. 그런데 왜 우리는 매번 마지막 달, 마지막 주간, 마지막 날이 되면 뭔가 제대로 한 해를 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떨치지 못하는 것일까? 원인이야 사람마다 제각기 여러 가지로 진단할 수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틀림없이 시작을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시작이 잘못되었으니 그 다음부터 일상이 조금씩 틀어지면서 끝내는 마지막도 썩 만족스러울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시작을 잘하면 결말이 좋을 확률이 크다는 것쯤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다. 앞부분을 치열하게 살아야 뒷부분에 여유가 생긴다. 아침 시간을 유용하게 보내면 저녁이 여유롭다. 오전을 게을리 보낸 사람은 오후가 되면 시간에 쫓기기 마련이다. 주초에 부지런해야 주말이 즐겁다. 월요일, 화요일을 놀며 지낸 사람은 목요일, 금요일에 시간의 압박을 받아 짜증이 난다. 청년기에 실력을 쌓아야 노년기가 편하다. 젊은 시절을 허송한 사람은 노후에 건질 것이 없다. 목사는 설교 준비를 주말에 하지 말고 주초에 미리 하는 것이 좋고, 신자는 성경 읽기를 주말로 미루지 말고 주초에 많이 하는 것이 좋다. 봄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지 않으면서 가을에 알곡이 영글기를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멸시이다.

우습지만 우리는 이런 이치를 잘 알면서도 새해를 제대로 시작하는 것을 반복해서 실패한다.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교정 없이 시작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번 실수를 고치지 않고 늘 하던 습관을 따라 상투적으로 그냥 또 한 해를 맞이한다. 정리하지 않고 시작하는 것도 실패의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한 해를 제대로 시작하려면 버려야 할 것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불필요한 일들을 그대로 어깨에 지고 있으니, 새로운 일을 맡을 어깨가 없다. 반성과 회개는 새해맞이의 중요한 채비인 셈이다.

게다가 준비 없이 시작하는 것도 문제이다. 새해를 허둥지둥 시작하면 일 년 내내 불안하다. 아침에 들고 나가기만 하면 되도록 가방을 저녁에 미리 챙기고, 아침에 입고 나가기만 하면 되도록 옷을 밤에 미리 추리면 좋듯이, 한 해를 마무리하기 전에 새해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계획 없이 새해를 시작하는 사람은 대체로 연말에 볼품 있는 무엇인가를 남기지 못한다. 한 해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또는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계획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반드시 해야 할 일과 귀찮긴 해도 유익한 일을 계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이를 모방하는 계획이건 나만의 참신한 창의적 계획이건 말이다.

각오 없이 새해를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최상의 연말을 기대하기 어렵다. 올해야말로 최고의 해로 만들어보겠다는 각오가 열두 달을 성실하게 살게 하고, 하루하루를 기억에 아로새길 날로 만들어보겠다는 다짐이 삼백육십오 일을 한결같이 값지게 만든다. 그렇게 하면 섣달그믐날에 최고의 한 해를 보낸 것을 자축하며 자신에게 상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시작을 잘한 것일까? 이번에도 예전처럼 아무런 생각 없이 올해를 시작한 것은 아닐까? 바다 가운데 마른 땅에 발을 내딛듯이(출 14:16), 시작부터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독수리 날개에 업혀 인도함을 받듯이(출 19:4), 출발부터 도약을 시도해야 한다. 앞이 아니라 위로 전진하자. 개인과 가정은 물론이고 교회와 교단도 잘 시작했는지 점검해보자. 안하는 것보다 늦게라도 하는 것이 낫다고 하니,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을 잘해야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