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그리스도인의 죽음
임관숙 사모(삼성교회)
‘오래된 메모지 한 장’. 그녀가 챙겨올 수 있는 이모의 마지막 유품이었다. 성경책 사이에 끼워놓은 메모지를 조심히 꺼내며 그녀는 말을 이어 갔다.
“코로나였대요. 60살 밖에 되지 않으셨는데…… 활동 보조인에게 ‘숨 쉬는 게 어렵다’ 이러시더니 이틀 만에 황망히 돌아가셨어요. 이모는 소아마비셨어요. 어릴 때부터 작은 자극에도 뼈가 잘 부러지더니 어느 날부터 전혀 걷지 못하셨대요. 가족도 자녀도 없이 외롭게 살다 가시긴 했어요…….”
아, 사모로서 나는 이 인생에 대하여 어떤 위로를 전해야 하는가?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흘렀다. 머릿속은 온갖 소망의 말을 더듬어 찾고 있는데, 그녀가 내민 메모지를 읽는 순간 멍해지며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10)’.
“이모의 책상 앞에 붙어 있던 메모예요. 책상 위에는 며칠 전까지도 꾹꾹 눌러쓰던 필사성경이 있더라고요. 장례식장에서 목사님이 그러셨어요. 이모는 코로나 때도 예배에 빠지시던 법이 없던 분이라고. 이모를 보며 늘 도전과 위로를 받으셨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평소에 ‘죽기 전 이틀만 앓고 죽고 싶어’ 기도하셨다는데 정말 그리되었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근심스럽고 가난하고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보였지만, 신앙과 삶 속에서는 항상 기뻐하고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모든 것을 다 가졌던 그녀의 이모 간증을 들으며 문득, 20년 전 지쳐 넘어진 나를 일으켜 세우셨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는 모든 것이 엉망진창인 것 같아 보였다. 유치원생인 어린 딸들을 데리고 오갈 곳 없어 남의 집에 얹혀살고 있었고, 신학공부와 사역에 빠져 있던 남편은 가정까지 헤아릴 여유는 없어 보였다. 나의 생활의 안정과 친밀함에 대한 욕구는 언제나 영적이지 못한 것으로 여겨져 부부싸움하기 일쑤였다. 나의 우울과 분노는 나날이 거세졌다.
내적, 외적으로 거지꼴이 되어버린 나의 인생에 대한 수치심을 감당하기 어려울 즈음, 아이들을 재워놓고 남편이 돌아오는 자정 무렵까지 무작정 운동장을 돌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마음에서 불이 나서 잠잠히 앉아서 기도할 수가 없었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냐며 예수 믿고 이렇게 망해도 되는 것이냐 다 남편 탓이라며 어두움 속에서 울며 운동장을 뱅뱅 돌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2년 정도 그렇게 기도하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설움과 분노에 찬 기도를 하며 운동장을 돌고 있었는데, 주님의 세미하지만 분명한 음성이 들려왔다.
“얘야, 너는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것만으로 너의 인생이 성공했다고 고백할 수 있겠니?”
“만약 남편을 잃고 자식을 잃고 불행한 여자라는 조롱을 받아도 예수를 믿은 사실 하나로 행복했다 말해줄 수 있니?”
울음이 터져 나왔다. 바보 같았던 나의 두려움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생활에 대한 염려, 이생에 대한 자랑, 잃어버린 구원에 대한 기쁨. 결국 나의 두려움의 실체는 불신앙이었던 것이었다.
“아버지.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예수님을 믿어서 이미 나의 인생은 성공했어요. 그것 하나로 충분해요.”
심령 깊은 곳에서 깨끗하고 진실한 고백이 흘러나왔다. 그 밤, 형편없었던 나를 다시 세워주신 은혜를 잊지 않으며 목회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비로운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게 해주셨고, 고난의 고비마다 승리를 주셨다. 본향이 있으니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 이 담대함은 주님이 주신 선물이다.
‘예수를 믿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한 인생’. 그녀의 이모의 삶을 들으며 주님과의 추억을 떠올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