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표정은 싫어
최광희 목사 (행복한교회)
1988년에 가왕 조용필이 발표한 노래 가운데 ‘모나리자’가 있다. 이 노래는 가수라면 한 번쯤 부르고 싶어 할 만큼 인기가 높아서 하현우, 김동명, 손승연, 임재욱, 환희, 알리, 울랄라세션, 소향 등 많은 가수가 부른 ‘모나리자’가 검색된다. ‘모나리자’의 가사 가운데 세 번이나 반복되는 중요 부분이 있는데 여기서는 자기 사랑을 받아주지 않고 무표정한 상대방을 모나리자에 빗대며 제발 표정을 바꾸어 자기 마음을 받아달라고 절규하고 있다.
정녕 그대는 나의 사랑을 받아 줄 수가 없나
나의 모나리자 모나리자 그런 표정은 싫어
정녕 그대는 나의 사랑을 받아 줄 수가 없나
그대는 모나리자 모나리자 나를 슬프게 하네
그런데 이 노래처럼 따뜻한 얼굴을 갈구하는 또 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시편 80편을 쓴 시인 아삽이다. 아삽은 열아홉 구절 가운데 네 번이나 얼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그중에 한번은 무서운 얼굴(면책) 때문에 죽을 것 같다고 호소하고(16절) 나머지 세 번은 얼굴(빛)을 비추어 달라고 간구하고 있다(3, 7, 19절).
아삽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정성껏 심어 가꾼 포도원에 비유하면서 지금 그 포도원이 원수에게 훼손되고 착취당하는 현실을 호소한다. 그리고 이제 이스라엘을 향해 무서운 얼굴로 화를 내지 마시고 부디 봄날의 따스한 햇볕 같은 표정으로 봐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다.
하나님이 통치자와 보호자가 되어주시는 나라 이스라엘이 어쩌다가 이렇게 원수에게 짓밟히는 처지가 되어 버렸을까? 그 원인은 물어볼 필요도 없이 그들이 지독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계속해서 불순종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여러 선지자를 통해 반복해서 회개를 촉구했지만, 그들은 귀머거리 독사처럼(사 58:4) 고개를 가로저어왔다.
하지만 이제 어려움이 생기고 고통이 오자 그 고통의 원인이 정치와 경제, 외교와 군사적 문제라기보다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에서 기인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비록 자신들에게 죄와 허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따스한 얼굴빛 만이 살길이라고 고백하며 그의 자비하심을 간구한다는 면에서 이 시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3년간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많은 타격을 입은 한국교회에게 필요한 마음 자세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어느덧 2022년의 달력이 마지막 잎새처럼 외로워 보이는 12월이 되었다. 늘 평범하게 흐르는 날짜와 시간이지만 연말과 연초는 기존의 흐름을 매듭짓고 새롭게 출발하고 싶은 시기이다. 이런 시기에 우리가 희망을 품는 데 필요한 것은 아삽처럼 우리의 상황에 대하여 바르게 진단하는 것과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여 그것을 찾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3년간의 코로나 팬데믹이고 그로 인한 신앙의 침체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자체가 문제이고 정부 당국의 교회 통제도 형평성을 잃었다. 신자들이 다른 생활권에 비교해서 유독 예배 모임과 신앙공동체의 활동에 대해서만 더 많이 두려워하고 소홀히 하고 있다. 일상 속의 다른 활동에 비하여 신앙생활이 속히 회복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한국교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졌고 하나님께서 눈에 힘을 주고 입술을 앙다물고 잔뜩 화난 표정 혹은 슬픈 표정으로 지켜보시는 사실을 놓친 것이 문제였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이 뜨거운 마음에 대하여 반응 없이 무표정한 모나리자가 아니었던가? 그러므로 2022년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얼굴로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다. 또한, 송구하지만 우리에게 하나님의 찌푸린 얼굴 대신에 따스한 얼굴을 비추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 하나님도 원래 그것을 원하신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화난 얼굴이 아닌 자상한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론 제사장에게 아침 번제 때마다 이렇게 축복하라고 시키셨다.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 6:2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