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수기 공모 우수작] 복음을 복지에 실어 세상 속으로_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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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복지에 실어 세상 속으로

김민수 목사(서산본향교회 전도목사, 요양원 원장)

 

지난 2021년 우리 교회(서산본향교회. 충남 서산시 소재. 담임목사 이성민)는 창립 30주년을 맞이했다.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교회로 성장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라 축하 행사 없이 광고로만 지나갔다. 30년 세월 동안 교회는 많은 일을 했다. 그 가운데는 잘 된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으며, 지금까지 계속되는 프로그램이 있는 반면 단발성 행사로 끝난 것도 꽤 된다. 이런저런 활동과 다양한 사건들이 모여 현재의 우리 교회를 이루어 왔다. 이 글에서는 그 사역들 가운데서 복지 관련 부분만을 떼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참고로, 필자는 담임목사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에 오래 있으면서-여기서 전도사, 강도사, 부목사를 거쳐 기관 사역 전도목사로 있다- 구제와 봉사의 일들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가까이서 지켜보았고, 그 과정을 글로 남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료급식

1990년대 초반 우리 교회가 처음 세워질 당시 담임목사님(현 이재철 원로목사)은 특별히 사회복지로 목회 방향을 세우겠다는 의도는 없었다. 그때는 복지라는 말조차 생소했다. 1996년부터 교회는 인근 독거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료급식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어르신들에게 점심식사를 대접했고, 많지는 않지만 담뱃값 정도의 용돈도 드렸다. 그 소문이 나서 목요일마다 교회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섰던 기억이 난다.

특정 의도가 있어서 이 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교회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가 구제였기 때문에, 그리고 당시 최일도 목사의 “밥퍼” 사역이 유명해서 거기서 힌트를 얻어 우리 실정에 맞게 시작한 것뿐이었다. 1997년 말 IMF 사태가 터지면서 사회적 혼란과 더불어 서산에도 어려운 분들이 많이 늘어났다. 이에 교회는 독거노인들 뿐 아니라 오시는 모든 분들로 그 대상을 확대하여 무료급식을 시행했다. 이 사업은 4~5년 정도 한 거 같다.

경로대학

이후 성도가 늘어나면서 예배당을 새롭게 지어 이사를 했고, 그와 더불어 교회의 봉사도 활동 영역을 넓혀 갔다. 2005년부터는 서산 지역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본향경로대학”을 운영했다. 400여 명의 어르신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예배당에 모여 특강을 듣고, 이후 댄스반, 컴퓨터반, 합창반, 한글반, 볼링반, 영어반, 서예반 등 각 반으로 나뉘어서 다양한 수업과 활동을 했다. 매주 어르신들을 모셔 오고 모셔다 드리고, 400여 명의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교사와 행정사무원으로 봉사하는 일은 오롯이 성도들의 몫이었다. 당시 온 교인이 자원봉사자로, 후원자로 이 사역에 참여하였다. 본향경로대학은 2012년까지 8년 여 간 지속되면서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을 주었다. 어른을 공경하는 좋은 교회라는 소문이 퍼지며 직간접적인 전도의 기회가 되었고, 교회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와는 별개로 뜻 맞는 성도들이 모여 “본향봉사회”를 결성하여 주말마다 장애인, 노인, 보육 시설 등을 다니면서 주말 봉사를 하기도 하였다.

재단의 설립과 노인 복지 사업

교회의 구제·봉사 사역이 복지라는 이름으로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이후의 일이다. 우리 교회도 이념과 제도로서의 사회복지보다는 사역의 일환으로, 활동 차원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여 복지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이 높아졌으며, 현장에서도 돌봄의 질적인 향상과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에 교회는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구제와 봉사를 전문적으로 담당할 기관으로 법인을 세우기로 했다. 이를 위해 교회는 약 1,000m2의 땅과 교인들의 헌금으로 조성한 약 10억여 원을 기본재산으로 출연하였다.

2009년 7월에 법인 설립을 위한 발기인 총회를 개최하였고, 그해 11월에 충청남도로부터 “사회복지법인 서산본향복지재단”(이하 법인 혹은 재단) 설립 인가를 받았다. 다음 해에는 지상 4층 규모의 건물을 짓고 노인요양사업을 시작하였다. 재단의 첫 사업은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 “한울타리요양원”과 “본향요양원”, 그리고 재가노인복지시설로 “한울타리재가복지센터”(주간보호)였다. 사업 초기에는 시행착오도 있었다. 운영상의 실수로 관계 당국으로부터 경고와 지정취소의 행정처분 조치를 받기도 했다.

교회가 사회시설을 운영할 때 주의할 점이 있다. 교회 안에서는 은혜와 사랑, 용서와 이해의 원리 하에 일들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웬만한 실수나 잘못은 이해되고 덮고 넘어간다. 하지만 교회 울타리를 한 발자국만 벗어나면 엄격하게 법과 규정의 적용을 받는다. 법인이 행정처분을 받게 된 것도 제도권 시설을 운영해 본 경험이 없었을 뿐 아니라, 인간적인 선의와 정으로 교회처럼 운영하다 보니 나온 과실(過失)이었다. 재정적 손해도 많이 보았다. 이 일을 계기로 교회와 재단을 엄격하게 분리하여 운영하게 되었으며, 재단은 법과 원칙에 어긋나지 않도록 적법성과 투명성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행정처분 기간이 끝나고 원래 시설들은 각각 “한울타리노인요양원”과 “한울타리병설재가복지센터”로 재지정을 받아 다시 사업을 재개하였다. 이후 장기요양제도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인해 법인에서는 노인요양사업을 확대하기로 하고, 2014년 4월에 서산시 인지면 화수리에 지상 2층 건물을 짓고 <본향화수노인요양원>을 개원했다.

재단의 확장과 아동·청소년 복지 사업

노인요양시설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즈음 교회는 미래의 세대인 아동·청소년 복지에 관심을 가졌다. 물론 훨씬 오래전부터(개척 초기부터) 교회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돌파구를 찾았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그러다 우연찮게 기회가 생겼다.

2019년 3월 법인 대표이사 자격으로 담임목사님이 시장과 면담을 하면서 서산시와 함께 아동·청소년복지사업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에 호응하여 시에서는 학대피해아동쉼터를 해줄 수 없겠냐고 조심스럽게 제안을 했다. 서산시에 꼭 필요한 시설이다, 귀 법인에서 해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당회에서 논의가 시작되었다. (법인이 생긴 이후로 교회는 대외적 성격을 띠는 사업은 법인을 통해 하기 시작했다. 담임목사님이 대표이사고, 장로님들이 재단이사여서 법적, 행정적으로만 교회와 법인이 구분될 뿐, 실제 일하는 데는 상호 긴밀한 소통 속에서 사역을 수행한다.)

 “교회가 아니면 이런 아이들을 누가 돌보겠냐? 쉬운 일, 돈 되는 일들은 서로 하려고 하겠지만 힘들고 귀찮은 일은 서로 안 하려고 한다. 이런 일을 우리가 해야 한다.”며 장로님들의 의견이 모아졌고, 법인에서 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지만, 시 담당자들이 바뀌고 당초 계획이 변경되면서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결국 본 법인이 서산시 학대피해아동쉼터 위·수탁 기관으로 선정되었으며, 여아쉼터는 2020년 10월에, 남아쉼터는 1년 후인 2021년에 개원하였다.

쉼터 공모에 참가하는 동안 교회에서는 또 다른 아동복지사업으로 지역아동센터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 일도 뜻하지 않게 이루어졌다. 지역아동센터 운영하려면 처음 2년 동안은 자부담으로 해야 한다. 최소 1억 가까이 드는 비용을 교회가 부담하기로 하고 –교인들의 후원금으로 충당할 계획이었다- 개원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모 지역아동센터를 알게 되었고, 다행히 그 시설이 인근 교회에서 운영하던 곳이어서 신앙적인 동질감과 개인보다는 법인에서 운영하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이라는 데에 뜻을 같이하여 인수를 추진하였다. 이로 인해 교회는 자부담 없이 바로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대표이사님이 한 말이 기억난다. “그동안 아동·청소년 사업을 하려고 애를 써도 그렇게 안 됐는데 때가 되니까 이렇게들 이루어지는구나!”

지난 30년간 우리 교회의 복지 사역의 특징을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사업 선정에 있어 가능하면 사람들이 꺼려하고 하지 않으려는 일들 –주로 돈 안 되는 일들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하려고 했다. 둘째는, 뭔가를 의도했다기보다는 되어가는 대로, 상황이 주어지는 대로 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교회 초창기에는 <비전21>이라는 거창한 마스터 플랜을 짠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도 당시의 필요와 우연한 계기에 의해 시작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셋째는, 독창적이라 내세울 만한 것은 그다지 없다. 무료급식이든 경로대학이든 남들 하는 것을 우리 실정에 맞게 조금 변형시켜서 했다. 그러나 어차피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랑하려고 한 게 아니기에,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까 싶어 한 일이기에 기발한 것, 독특한 것, 창의적인 것에는 아예 신경도 안 썼다.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한 가지는 꼭 언급해야겠다. 복지와 복음전도와의 관계이다. 우리 교회가 복지사업을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복음전파이다. 어떤 사업을 하든 이 이를 전제를 깔고 간다. 물론 법인이 공공단체이기 때문에 종교 활동에 제약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강요를 못할 뿐 활동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필자가 있는 요양원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수요일, 주일) 예배를 드린다. 참여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프로그램으로 알고 참여하고, 교회에 다니지 않는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은 어르신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함께 와서 앉는다. 강요하지는 않지만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찬송을 따라 하고 말씀을 듣게 된다.

쉼터에서는 선생님들이 어린아이들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기도를 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 한다고 한다. 한번은 선생님이 성경을 읽고 있으니까 글도 모르는 아이가 자기도 아무 책이나 갖고 와서 펴놓고 앉아 있었다고 한다. 제도권 교회와 모임 형식에 집착하지 않으면 복음을 전할 여러 방법들은 있다고 본다. 요즘은 찾아가는 서비스가 대세가 아닌가.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하기를

우리 교회가 지난 30년간 했던 일들을 나열해 보았다. 지금은 노인과 아동·청소년 분야에서 작은 일을 하고 있지만, 장애인, 미혼모, 다문화, 한부모, 외국인 근로자 등 앞으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은 많이 있다. 교회의 소망은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함께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원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지금-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들, 해야 하는 일들을 하려고 한다. 우리 교회로 인해 누군가의 삶이 영적변화는 물론이요,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작게라도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

 

<우수작 수상 소감>

애초에 수기 공모에 응할 마음은 없었다. 천성이 게으른지라 일 만드는 걸 싫어하고,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이면 가능하면 안 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글을 쓴 이유는 이런 형식으로라도 기록을 남겨 두어야 할 것 같은, 일종의 오래된 자의 부채의식 같은 것이었다.
성도들이 고생을 많이 하였다. 담임목사님과 장로님들의 결정에 군말 없이 따라주었고, 몸으로 물질로 힘에 지나도록 애썼다. 지금도 그들은 꼬박꼬박 후원금을 내고 있다. 나는 그저 그들의 수고를 정리만 했을 뿐이다.  
일들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하셨다 하는 느낌이 든 때도 있었다. 분명 법적으로, 행정적으로 안 되는 일인데도 사람의 실수와 착오로 인해 결과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하나님의 일하심은 신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