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보다 교회, 지역교회보다 보편교회
신자 개인을 “지체”라고 정의하는 것은 그만큼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는 의미이다. 신자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피조물이라는 가치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고 성령님이 보증 되어주시는 성도의 가치를 보유한다. 삼위일체의 은총 가운데 영원과 역사와 현재에 연관된 신자는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잘라버릴 수 없다. 의수나 의족과 달리 “지체”는 살아있는 존재이므로 생동감을 표현하며 각기 자기만의 고유한 역할을 담당한다. 어떤 지체 같은 다른 지체는 없다. 그래서 각 지체는 혼동되거나 교체하거나 제거할 수 없이 그 자체로 유일하게 가장 가치 있는 존재이다.
때때로 “지체”라고 불리는 신자들 사이에 자신이든 타인이든 경시하는 풍조가 눈에 띤다. 잘났다는 지체들이 많은 환경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위치를 상대적으로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이나 누군가를 향해 없어도 되는 존재처럼 깎아내리는 것은 “지체” 명칭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신자를 “지체”라고 부르는 상황에서 자기경시도 문제거니와 타인경시는 더욱 큰 문제이다. 이런 현상은 악한 의미의 비교와 시기를 자아내고 경쟁과 다툼으로 몰아가며 다툼과 공멸로 종결된다. 그래서 누구에 의해서건 신자 개인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런데 신자 개인을 “지체”라는 정의하는 것은 “몸”으로 비유되는 교회가 전제될 때만 의미가 있다. 몸 없는 지체가 무의미하듯이, 교회 없는 신자는 무의미하다. 지체의 가치가 몸과의 결속에 달려있는 것처럼, 신자의 가치도 교회와의 결속에 달려있다. 지체가 몸의 일부를 형성하며 몸 전체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점에서 몸이 우선순위를 가짐은 의심할 바가 없다. 교회와 신자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지체인 신자는 몸인 교회를 형성하는 부분이며 교회와 생명적인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그래서 한 지체를 살리겠다고 온 몸을 파괴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인 만큼이나 신자 개인의 유익을 위해서 교회를 손해에 빠뜨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몸과 지체의 관계를 신앙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개인의 유익을 위해 교회에 손해를 끼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교회를 쥐락펴락하며 세도를 부리거나 세력을 형성하는 못된 일을 한다. 교회에서 세속 기업의 최고경영자처럼 군림하려는 행위도 악하고 교회를 사유화하려는 시도 역시 악하다. 목사가 노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교회를 폐쇄하여 처분하는 것이나 신자가 노동조합 같은 것을 만들어 이권 투쟁에 들어서는 것도 악하다. 뒤에서 은근히 입김을 불어넣어 교회를 조종하는 것도 악하고, 전면에 나서서 교회를 장악하려는 행위도 악하다. 신자와 교회의 관계는 지체와 몸의 관계와 같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지 개인에게 유리해도 교회에 불리하면 하지 않고 개인에게 불리해도 교회에 유리하면 하는 것이 맞다.
이와 더불어 우리가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지역교회와 보편교회의 관계이다. 여기에도 지체와 몸의 관계가 성립된다. 지역교회가 지체라면 보편교회는 몸이다. 지체가 몸을 형성하듯이 그리고 신자 개인은 지역교회를 형성하듯이, 지역교회는 보편교회를 형성한다. 지역교회 하나하나가 소중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지역교회가 소중한 까닭은 보편교회의 일부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더욱 큰 진리이다. 그래서 이러한 이념을 상실한 채 지역교회 지향성이 과도하게 나타나면 보편교회는 언제나 몸살을 앓는 법이다. 이것이 지역교회가 어떤 행사를 하든지 과연 보편교회 이념에 적합한지 살펴봐야 하는 이유이다. 아무리 훌륭한 사업이라 할지라도 보편교회에 방해가 되면 그만 두는 것이 옳다.
주변 교회가 내홍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미소를 짓는 것은 정말 한심한 노릇이고, 그 교회가 망가지기를 은연중에 기다리는 심보는 아주 그릇된 것이며, 그 결과 우리 교회에 신자 수가 늘어나기를 바라는 기대감은 악하기 짝이 없다. 많은 신자의 수를 자랑하는 교회들이 주변의 작은 교회들의 신자들까지 흡수하려는 시도를 옳다고 볼 수 있는가? 열정과 선교라는 미명 아래 막대한 재정을 투자하여 교회를 개척함으로써 기존하는 작은 지역교회가 당할 고통을 고려하지 않고 작은 교회들을 고사시키는 것에 박수를 보낼 수 있는가? 각개 지역교회가 스스로 그리고 서로에게 자율과 평등과 협동이라는 원칙을 고수할 때 비로소 보편교회 이념이 달성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