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리 따라 사는 삶
김진필 집사 (강성장로교회)
물질과 탐욕으로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기 어려워진 모습을 돌이켜 넉넉함을 회복해야
숨 고르기
2019년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딸아이에게 ‘자연(땅)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고, 나 또한 도시 생활의 빡빡함을 달래기 위해 아내 지인을 통해 ‘텃밭 농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초보라 장인 어르신의 도움을 받아 밭고랑을 만들고, 퇴비를 뿌리고, 씨앗 및 모종 심는 법 등을 하나하나 배워 나갔다.
아직은 찬바람이 느껴지는 4월에 감자, 상추, 완두콩, 부추 등을 심었다. 씨앗 및 모종을 심고 약 2주 정도까지는 큰 변화가 없었으나, 그 뒤부터는 감자와 완두콩에서 싹이 움트고, 모종들에서는 새로운 잎사귀들이 하루하루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이 무척이나 신비로웠다. 파란 싹들이 돋아난 후부터는 가족들과 함께 오지 않아도 꼬박 꼬박 일주일에 2∼3회 정도 텃밭을 둘러보고, 자라나는 식물들과 눈인사, 발자국 인사를 하면서 조금씩 텃밭 식물들에게 애정이 가기 시작했다.
텃밭 농사 초기에는 키우는 식물들만 눈에 보였는데 어느덧 그 주변의 다른 것들이 내 눈과 마음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선, 땅에서 나는 태초의 편안함과 같은 그 흙 내음, 다양한 풀과 들꽃들이 실바람에 서로를 스치며 내는 소리와 싱그러운 풀 내음, 벌과 나비들의 분주하지만 평화로운 날갯짓, 거미줄에 매달려 있는 거미,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개구리와 달팽이들의 치열하지만 조급해하지 않는 것 같은 일상에 매료되기에 충분했다.
도시 생활의 복잡함 속에서 이어지는 인간관계의 어려움과 피곤함, 미래에 대한 고민과 이따금씩 기독교 신앙인으로써 잘 살아내고 있는지에 대한 고뇌로 평온함이 깨어지고, 삶이 버거워지는 순간들을 맞이할 때가 있다. 그러한 때에 나보다 지혜로운 아내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말씀 묵상과 기도에 전념하라‘고 훈수를 둔다. 물론, 나 또한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나의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한 나만의 방법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텃밭을 통해 자연을 주신 하나님과의 만남이 교회공동체에서의 신앙생활과 더불어 나의 삶을 숨 고르기 하게 하여 영혼의 풍요로움을 더해주었다.
넉넉함
한해의 6월이 오면, 회사 또는 교회에서 중간 결산을 하게 된다. 올 상반기 동안 얼마나 성과를 거두었는지, 교회에서는 올해의 비전대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프로그램 및 행사를 진행하고, 그에 따른 예결산에 대한 평가를 진행한다.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도 예수님을 닮아 가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집중했는지 겸허히 반성해 보는 시간을 가진다.
텃밭 또한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그동안, 식물이 잘 자라기 위해, 주기적으로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고, 식물들에 대한 애정과 사랑에 대한 1차 결실이 6월에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내가 애쓰고 노력한 시간은 미비한데 열매의 아름다운 자태나 그 개수는 과분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옛말처럼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이 순리이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연은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이 시점에도 그 순리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 경이로움을 직접 목격하면서, 창조의 섭리를 거스르는 우리 인간의 죄성과 욕심에 대해서 다시 한 번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경이로움은 나의 삶의 가치관까지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텃밭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음식과 물품들을 불필요하게 다량으로 구매한 적이 많았는데, 요즘은 필요한 양만큼만 구매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한 태도의 변화는 텃밭에서 필요한 양만큼 수확을 하다 보니, 적당히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과, 필요 이상의 수확물이 생겼을 때 그 넉넉함에 대한 만족감을 넘어 이웃과 나눔에 대한 긍정적인 욕구가 샘솟게 되었다.
비록 많은 양과 비싼 식물들은 아니지만 몇몇 교회 분들과 이웃들에게 내가 직접 기른 유기농 상추, 부추, 감자 등을 나누어주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웃을 수 있다는 넉넉함을 선물 받게 되었다. 문뜩 텃밭의 풍요로움 속에서 나는 언제부터 그 일상에서의 풍요로움을 망각하고 있었는지 묵상해 보았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으로 우리에게 거저 주신 영혼의 자유함과 넉넉함!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는 말씀을 실천하지 않고, 물질과 탐욕을 사랑한 결과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고, 더 나아가서 이웃을 사랑하기가 어려워진 우리들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이켜 그 넉넉함을 회복해야 한다.
평화로운 삶
텃밭에서의 7∼8월. 그 강렬한 태양 빛으로 인해 식물이 타들어 말라비틀어지고, 흙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모습을 볼 때면 내 입술과 마음마저 바짝바짝 말라가는 것을 느낀다. 이러한 고통의 근원은 무엇인가. 또한 그 가치와 역할은 무엇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때 성경의 인물들이 떠오른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 형제들에게 미움 받은 요셉, 광야에서의 모세, 가족들까지 떠난 욥, 항상 목숨이 위태로웠던 다윗, 십자가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예수님까지! 왜 하나같이 고통과 고난의 연속이었던 인물들이 성경에 등장하는 것일까? 그것에 이유를 아직 명확하게 깨닫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그러한 고통 뒤에 보다 더 성숙해져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만이 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것을 아닐까?
그러한, 창조의 섭리와 그 섭리대로 사는 삶의 가치를 텃밭에서의 사계절을 보내면서 진정으로 평화로운 삶이란 ‘하나님 섭리 따라 사는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 코로나19가 끝나면 나에겐 작은 소망이 있다. 텃밭에서 수확한 식물들을 교회 지체들과, 이웃들과 함께 나눠 먹으면서 더불어 섭리 따라 사는 삶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