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신 이단대책위원회와 두 날개 선교회에 바랍니다
< 유영기 목사, 합신 신약학 교수 역임 >
<이 원고는 2015년 6월 13일자 기독교개혁신보 제697호 4면에 게재된 두날개 공청회 특집과 관련해 그에 대한 반론 형태로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먼저 자신이 아닌 다른 대상을 개혁하려고하는 자는 독사의 독을 뿜을 수 있다”
두 날개 선교회에 대한 합신 이단대책위원회 (이하 이대위)의 비판과 지적을 보면서 혹시라도 합신의 ‘바른 신학’에 대한 오해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마음에 이 칼럼을 씁니다.
합신이 추구하는 ‘바른 신학’은 개혁신학(Reformed Theology)입니다.
개혁신학(Reformed Theology)은 관습이나 제도 심지어 신학의 패러다임 등으로 인해 굳어져가는(Formation) 신학이 아니라 ‘특별 계시의 역사적 과정(the historical progression og the special revelation)’의 관점으로 사고하며 행동하기 위해 끊임없이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개혁적(Reformation) 신학입니다. 곧 바른 신학은 닫혀진 패러다임 (Closed paradigm)이 아니라 개혁의 첫 번째 대상인 자신부터 그 이후 교회와 사회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뤄내는 삶을 살아가도록 개혁하는 열린 패러다임(Opened paradigm) 구조의 신학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신학은 가장 성경적이면서도 가장 실천적인 신학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스승이신 정암 박윤선 목사님은 생전에 신학은 철저히 교회를 위해서만 존재해야한다고 역설하셨던 것입니다. 심지어 교회를 위하지 않는 신학 곧 학문 자체의 신학은 죽은 신학이며 오히려 교회에 해독을 끼치는 사악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번은 “어떻게 신학 박사의 논문이 성경보다 더 어려울 수 있습니까?”라고 하시며 다른 학문과 달리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일반 교인들이 더 깊고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내자로서 교회의 덕을 쌓도록 해야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유산과도 같은 박윤선 목사님은 성경 전권의 주석을 다른 학자들의 주석들과 달리 현학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받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적으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합신이 표어로 삼고 있는 ‘바른 신학’은 성경과 성령을 절대 의존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려는 구속사적 관점으로 교회에 덕이 되는것을 목적으로 하며 궁극적으로는 성도들의 ‘바른 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른 신학’은 우선 자신을 개혁하는 과정 곧 ‘바른 생활’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성찰과 개혁이 없으면 자신과 다르다고 판단되는 대상들에 대하여 비판적인 신학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른’이라는 표현은 ‘다른’ 대상을 ‘바르지 못하게 보는’ 관점이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곧 자신만이 바르며 자신과 다른 대상은 ‘그른 대상’ 결국 ‘나쁜 대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개혁주의 신학은 끊임없이 개혁하는 열린 패러다임 구조인데 그 개혁 시켜야할 우선적 대상은 자신과 달라 보여 그르다고 생각하는 대상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스승이신 정암이 합신 태동시기 설교 중에 여러 차례 간곡하게 권고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설교하실 때 그 분의 특유의 표정과 더불어 칼칼한 음성이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정암은 “남을 개혁하려고 할 때 자칫 잘못하면 독사의 독을 뿜어내는 독사의 무리로 전략할 수밖에 없다.” 경고하셨습니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하여 독사의 독을 내뿜는 자가 될 것이 아니라 먼저 겸허하게 자신을 개혁하기 위해 회개하자”고 눈물어린 호소를 하신 정암을 기억하고 그의 제자로서의 우리의 삶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주장하는 개혁주의 신학의 ‘열린 패러다임 구조(Opened paradigm system)’는 21세기에 들어 개혁주의 신학 내에서 개혁주의 신학의 패러다임이 ‘열린 패러다임 구조’로 변화되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그 용어의 표현에서만 같지 내용은 다릅니다.
곧 개혁주의 신학의 내용을 바꾸자는 데이빗 에드워즈(David L. Edwards)나 가렛트 죤스(Gareth Jones) 또는 변화해가는 상황에 따라 개혁주의 신학의 내용을 적절하게 수정해나가자는 수정적 개혁주의 신학자인 마르쿠스 보르그(Marcus J. Borg) 혹은 웨더번(A.J.M. Wedderburn)들이 주장하는 ‘열린 패러다임 구조’가 아닙니다.
곧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바른 신학’의 패러다임이 곧바른가를 돌아보아 스스로를 개혁하는 ‘열린 패러다임 구조’를 말하는 것입니다.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받는 겸허함이 없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은 마치 휘어진 자를 가지고 대상이 잘못되었다고 어거지를 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아닌 상대방을 개혁하려고할 때는 그것을 전달하는 형태가 더욱 겸허한 태도가 되어야만합니다. 만일 그러하지 않고 인격 변수(Person variable)의 형태가 비판적이면 그 비난을 받는 사람은 마음이 상하게 되고 “당신이나 잘하세요!”라는 비웃음만 사게 될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개혁의 대상이 개인이 아닌 교회일 경우에는 자칫 자신이 바르다고 생각하는 굳어진 패러다임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허무는 도끼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합신 이대위에게 바랍니다.
저는 그동안 합신 이대위가 이 혼탁하고 어두워져가는 한국 기독교 사회에 훌륭한 신학적 방파제요 등대의 역할을 감당해 왔다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금번 두 날개 선교회의 공청회 및 개혁신보 등의 비판 내용은 두 날개를 제자훈련 프로그램으로 하고 있는 합신 내 교회들은 물론 다른 여타 교단에 소속된 교회들의 목사님들과 교인들을 이단이라는 도끼로 내리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은 아닌가하여 마음이 심히 안타깝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일을 계기로 이대위는 앞으로 어떠한 교회나 선교단체 등을 이단으로 규정하기 이전에 자체적으로만 연구하고 결정하기 보다는 이대위내 합신 교수 자문위원들에게 자문을 요청해주셨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합신 이대위 위원들의 신학이 항상 절대 무흠하지만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국민들을 공포스럽게 위협하는 메르스의 주제로 얼마 전 방영된 개그 콘서트의 ‘민상 토론’같은 이대위가 되지 아니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드리는 저의 진정어린 권면입니다. ‘민상 토론’ 풍자의 포인트는 정치 풍자보다는 토론자의 말꼬리를 붙잡고 토론자의 의도와는 전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왜곡하는 사회자의 태도와 민감한 질문을 피하려고 애쓰지만 매번 걸려들고 마는 개그맨 유민상의 억울한 모습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단이라는 규정은 신론과 기독론 및 교회론 등 교의적인 내용을 의도적으로 왜곡한후 고집스럽게 체계화시켜가는 대상에게만 적용해야하는 것입니다. 이대위가 존재하는 목적은 교회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함인데 합신내 두 날개를 적용하고 교회들도 그 대상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셨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대상은 반드시 그 대상을 불러 소명의 기회를 주고 지도를 해주는 것이(마태복음 18장 15절~17절) 성경의 말씀에도 적합 합니다.
만일 그리하지 않고 비판하는 대상자의 말꼬리를 붙잡고 이단성 시비를 삼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만일 그리한다면 지난번 두 날개 공청회 발표시 주장된 합신 이대위 박형택 목사의 ‘메시야 과정설’로 인해 현재 인터넷 언론 및 신문 등에서 오히려 박형택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는 비판에서 합신 이대위는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두 날개 선교회에 바랍니다.
금번 합신 이대위의 공청회로 인하여 두 날개를 제자훈련 프로그램으로 적용하고 있는 교회들로 하여금 이단성 시비를 받게 된 것을 너무 억울하고 분하게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자신들을 돌아보고 두 날개 안에 개혁해야만할 굳어져가는 패러다임 체계는 없는가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두 날개 교회들과 합신 이대위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달려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이요 한 지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히 두 날개가 성경과 성령의 균형을 잡아가는데 있어서 금번 합신 이대위의 지적은 좋은 약이 될 것임이 분명합니다.
무엇보다 금번의 사태로 인하여 합신 내 두 날개 프로그램 적용 교회들뿐만 아니라 지난번 어려운 산고의 고통을 거쳐 하나 된 합신 교회들 중에서 교단 탈퇴까지 협의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그야말로 주님의 몸을 나누는 일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십여 년 이상을 합신에서 교수로서 부족하나마 신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앞부분에서 주장하였던 ‘바른 신학’을 위해 성경과 성령이 균형 잡힌 개혁주의 사람이 될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물론 두 날개의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배우고 적용하는 국내외 교회들이 다양한 교단과 교파에서 모였기에 각자의 신학과 신앙 양식의 컬러가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제자훈련을 배워가서 적용하는 교회와 선교단체들도 가능한 개혁주의 신학의 내용을 갖도록 노력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