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신 신학교육의 기초와 변화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이하 합신) 40주년이 막 지난 시점에 제11대 김학유 신임 총장 체제가 시작됐다. 축하하는 마음으로 합신에 기대하는 것은 개인마다 조금 다를 테지만 그 존재적 정체성과 건전한 변화이다. 합신의 정체성의 근간은 잘 알려진 대로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이라는 목표에 있다. 특히 합신에서 교육하는 실체는 바른 신학에 있고 그것은 역사적 개혁주의 신학을 말한다. 따라서 합신은 개혁신학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중심축을 둔다.
그런데 바른 신학이 바른 교회와 바른 생활로 이어지려면 좀더 능동적이고 유연한 발전적 성찰과 적용이 필요하다. 즉, 신학 훈련은 교회와 실생활과의 연계를 부단히 생각하면서 진행돼야 한다. 김학유 신임 총장의 취임사는 이러한 자각을 바탕으로 한다. 신학교에서의 신학 훈련이 그저 학문적 테두리 안에서 교조주의에 갇히지 않고 성경과 현장의 균형을 추구하며 교회와 사회를 섬기는 데까지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그 골자이다.
이는 선교학자로서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현실적이고 타당한 시각이라고 평가된다. 다만, 근자에 현장에서 우리가 신학교 때 배운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정체성에 뿌리를 확고히 내리고 있는지, 크든 작든 변질과 오류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냉정히 생각해 봐야 한다. 체력 단련과 총검술의 기본 동작 및 기초, 유격 훈련 등이 실전의 모태가 되듯이 합신은 신학교로서 훈련소임을 먼저 분명히 해야 한다.
이런 뿌리 깊은 개혁주의 신학 훈련이 신학교에서 이루어져야 그 전제 위에 적용과 변화의 유연성을 논할 수 있다. 자칫 개혁주의 신학으로는 목회나 선교가 안 된다는 상투적이고 자조적인 왜곡에 의한 목회 방법론이나 선교전략이 또 다른 오류를 초래하지 않느냐는 우려도 있다. 이단과 인본주의가 난무하는 시대라 더 그렇다. 신학적 기초의 중요성과 목회와 선교 현장에서의 신학적 오류의 문제, 그리고 현장에서의 유연성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까.
이에 대해서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는 정비공장에서의 구호와 엮어 생각해 본다 제품의 원활한 가동성은 올바른 정비와 수리에 달려 있다. 세월에 따라 변색, 부품의 오염과 부식, 회로의 오작동 등으로 고장이 나는 제품들을 수시 점검 정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불순물로 오염된 부분을 청소하고 헐거워진 부분을 조이고 활력 없는 부분에 기름칠을 하는 것이 정비의 핵심이다. 우리의 신학과 신학교육도 그렇다. 신학적 불순물을 제거하고 헐거워진 정체성을 분명히 세우는 데에도 온 힘을 다해야 한다. 그 기초 위에 유연성을 기르는 기름칠을 해야 한다.
유연성은 건전한 변화와 현장에서의 개혁신학과 신앙의 실천적 적용력을 아우른다. 이는 적당한 타협이나 변질을 초래하는 일탈을 뜻하지 않는다. 올바른 신학을 기초로 사역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적응하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합신을 비롯한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교단의 신학교 교육은 주로 전형적인 목회자 양성에만 초점이 있었다. 신학교는 바로 그것을 위한 학교임이 자명했다. 그러나 여러모로 다변화된 우리 시대에는 건전한 개혁주의 신학을 제대로 익힌 다양한 분야의 일꾼들이 필요하다.
따라서 목회자, 선교사뿐만 아니라 전문 문화사역자와 교육자들이 실제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는 시대이다. 문화사역자라 함은 예컨대, 음악가, 미술가, 작가, 큐레이터, 출판인, 언론인, 비평가, 유튜버 등 문화 예술 영역에서 섬기는 자들이다. 또한 교육자는 교회교육은 물론 아동, 청소년, 청년 전문 사역자, 상담자, 기독교적 교육의 이론과 실제를 연구하는 자들과 전문 공과 집필자, 교육방법론 연구가, 개혁주의 고전을 번역하는 전문 번역가 등을 망라한다.
바로 이런 일꾼들까지도 튼실한 신학적 기초로 훈련시켜 배출하는 신학교로서의 변화도 한번 논의하고 시도해 봐야 한다. 단지 목회와 선교를 위한 학생들만 교육할 것이 아니라 위에 말한 다양한 일꾼들을 배출할 목표로 그런 비전을 지닌 적절한 학생들을 선발하고 양성하는 신학훈련장으로서의 넓은 틀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합신이 신학적 정체성을 든든히 하면서도 현장에서 필요한 실천력과 적응력을 지닌 일꾼들을 배출하는 학교로 지속적으로 변화, 발전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