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재앙인가, 평안인가?
문성환 장로(남포교회)
세상의 떡, 재물, 건강, 즐거움으로만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광야의 교훈
시작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가 수많은 목숨을 위협하며 앗아간다. 그로 인해 만남과 모임이 멈추고 여행의 발걸음도 묶이고, 공 예배와 성도의 교제까지 제약을 당한다. 당대 미증유의 엄청난 재난 앞에 우리는 망연자실 서 있다. 이렇게 코로나19는 재앙임이 분명한데 굳이 평안을 함께 거론하는 것은 예레미야의 말씀 때문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비통해 하는 유다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거기에 가서 집 짓고 텃밭 만들고, 가정을 꾸려 자녀를 낳고 번성하며 살라, 70년이 차기까지 그곳에서 지내라시며 주신 말씀이다. 쉽게 이해되진 않지만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아멘으로 받고 상고해 본다.
실제 나중의 역사는 이 말씀대로 이루어졌다. 포로 후 귀환한 유다 백성들은 바알, 아세라 등 이방 신들을 숭배했던 조상들의 악습을 버리고,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만 섬기는 신앙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1, 2계명을 온전히 지켜 행하기까지 변화될 유대 민족의 미래를 내다보시고, 이 포로의 고난이 재앙이 아니요 평안이라 말씀하신 것일까? 성경의 다른 기록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도록 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며 가르치고 계심을 증언할까?
1. 광야 40년 이스라엘의 행보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 감격에 벅찼던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그 다음 행보는, 40년 간 거칠고 간조한 광야 길이었다. 애굽에서의 힘든 노역에 지치고 고단했을 그들에게 왜 당장 풍족하고 안락한 길을 주시지 않았을까? 오히려 물도 먹을 것도 부족하고 전갈과 역병까지 도사리는 광야 길 40년을 보내게 한 이유는? 40년 광야 길 끝 무렵에 하나님은 답을 주셨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않는지를 알려 하심이라”(신 8:2)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원은 받았지만, 그들이 과연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지, 안 하는지, 그 마음을 아시고자 그리 하셨다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기에, 40년이란 긴 세월 동안 풍족함이나 안락함과는 거리가 먼, 광야의 환경 속에서 이스라엘을 테스트하셔야만 하셨을까?
정착된 집도 없고, 천막을 치고 이리 저리 옮겨 다녀야 하는 이스라엘의 당장의 고단한 처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없다. 전에 애굽에서는 전혀 듣지도 못했던 십계명과 다른 여러 계명과 율례와 명령들을 주시면서, 그것을 왜 지켜야 하는지는 설명도 없이 지켜 행할 것을 엄히 명령하셨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롬 15:4)이라 했으니 광야 40년의 기록이 주는 가르침은 분명히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알고 싶어 하셨다면, 오늘 우리 세대의 마음도 어떠한지 알고 싶으실 것이다. 그 이유로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주어졌다면 오늘 우리에게도 편안하지 않은 환경이 주어질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 아니고, 이 세상이 의지하는 재물이나 건강이나 세상 즐거움으로만 사는 것 아니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닫고 돌이키게 된다면, 광야 길이든 코로나 바이러스든 그것은 결과적으로는 재앙이 아니고 오히려 평안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2. 신약 시대 명령들의 재 조명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는 명령은 사실 광야 40년 시절부터 구약 시대 내내, 그리고 신약시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변함없이 강조하시는 명령임을, 성경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은, 모든 계명 중 크고 첫 째 되는 계명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 말씀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지에 대하여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요 14:21절), 그리고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요 14:23-24절) 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연결 지어 보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문제에 대하여도, 성경은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10)고 말씀하심으로써, 우리가 만약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려 한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하신다. 또 예수님과 친구가 되는 문제에 대하여도,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4)고 하심으로 <주의 명령을 지켜 행해야> 예수님과 친구가 된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라>는 명령은 우리의 신앙에 너무도 중요한 명령으로 자리잡는다.
심지어 산상수훈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고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는 명령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더욱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재앙처럼 다가온 역병이 만약 우리로 이 중요한 명령을 먼저 지켜 행하도록 우리를 바른 길로 이끌어가는 환경이 되어 준다면, 그것은 단순한 재앙만이 아니고 결국은 평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3. 교회의 비대면 예배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까지 중단되게 어찌 그냥 보고만 계시는 것일까? 그래도 예배만큼은 대면으로 드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교회를 그렇게 지켜 주셔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주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너희가 드려야 할 영적 예배,”(롬 12:1)라 하신다. 공 예배로 함께 찬송하고, 말씀 듣고, 교제하는 기쁨이 우리에게 너무도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삶의 현장에 나아가 우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내주지 않고, 우리 지체를 오직 하나님께 의의 병기로 드리는, 우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이와 같은 영적인 싸움 또한 중요하다고 말씀 하신다.
이 영적 예배는 어느 곳에서든 언제든지 마음껏 드릴 수 있는 예배이기에, 비록 비대면 예배의 아픔 속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이 영적 예배에 더 힘쓰는 계기가 된다면, 이 코로나의 아픔이 재앙이 아니고 오히려 평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끝내며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고자”(삿 21:25) 하는 것이 인생의 악한 본성이기에,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네 생각, 네 고집 말고 <하나님 명령을 지켜 행하라>고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계속하여 권면하고 계신다.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고 나면, 아무리 하나님 명령대로 살려고 해도, 이미 문이 닫히고 기회는 끝나버린 것일 테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이 재앙으로 다가온 코로나 바이러스가 빨리 종식되기를 우리가 한 마음으로 소원한다. 그렇다고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자세가 아니라, 이 세상 나그네 길 떡으로만 살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그 푯대를 향하여 달음질하기를 힘쓰는 계기가 되어 하나님 안에서의 참된 평안으로 함께 나아가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