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신앙과 상식 _ 김영엽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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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신앙과 상식

 

<김영엽 목사 | 다움교회>

 

신앙생활이라고 그리스도인들이 상식 이하의
행동과 수준을 일삼거나 묵인해서는 결코 안 된다

 

신앙생활에서 신앙과 상식을 혼돈 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상식으로 생각해야 할 경우에 신앙으로 판단하고, 신앙으로 판단해야 할 경우에 상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결여로 인해 발생한다. 상식적으로 행동하고 판단하는 것과 신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분리되거나 별개의 것이 아니다. 그 둘은 함께 있는 것인데 때와 상황을 따라 적용되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이끌어 나온 모세가 하루 종일 재판하는 일로 힘들었다. 광야에 살았던 미디안 족속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와서 그것을 보고 모세에게 권면한다. “그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그들에게 보이고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 부장과 십 부장을 삼아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큰일은 모두 네게 가져갈 것이요 작은 일은 모두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너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네게 쉬우리라”(출 18:19-23). 이에 모세가 자기 장인의 말을 듣고 그 모든 말대로 하여 피곤함도 덜고 백성들을 안정되게 인도했다.

이드로의 제안은 상식적이었다. 모세가 이 상식적인 제안을 신앙으로 제한하지 않았다. 우리의 일상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들로 가득하다. 그것을 신앙적인 눈으로 초월해 보려고 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집단, 공동체의 일들은 지극히 상식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면에서는 신앙적으로 판단해야 할 경우가 더 많다.

내가 아무리 신앙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어도 회의를 할 때와 전체가 움직여야 할 경우에는 상식적인 건전한 판단이 필요하다. 가장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것을 찾아 결정하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일에서는 그 내용이 상식을 뛰어넘는 것을 요구한다 하더라도 믿음으로 결정해야 한다. 하나님의 분명한 뜻인데도 우리는 상식적으로 판단하려고 할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되면 신앙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신 뜻이 무엇인지 잘 분별하면 할수록 믿음으로 행하는 것과 상식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에 혼돈을 줄일 수 있다(롬 12:1-2). 상식과 신앙이 어떻게 어우러져야 하는지를 다윗에게서 볼 수 있다.

다윗은 아버지의 양을 지키기 위해 평소에 고정 타깃과 이동 타깃, 자기가 달리면서 고정 타켓과 이동하는 타깃을 맞히는 훈련을 충분히 함으로 양들을 지켰다. 그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과 행동이었다. 그러나 골리앗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을 했을 때 다윗은 신앙으로 행하여 골리앗 앞에 섰다. 상식적으로 판단했던 형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골리앗 앞에 믿음으로 나아갔다. 골리앗이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을 모욕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다윗이 나아간 것이다.

그에 비해 사울왕은 상식적으로 판단하는 일에서도 실패했고, 신앙적으로 생각하는 일에서도 실패했다. 매우 구체적인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믿음으로 진멸했어야 할 때 자기의 상식으로 판단하여 아말렉 왕 아각과 좋은 짐승들을 살려 데리고 온 것이다(삼상 15장).

신앙과 상식이 혼돈되어 버린 것이다. 그 사건은 사울왕이 하나님께 버림받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상식적으로 행동해서는 안 되는 일이 많다. 동시에 상식적으로 판단해야 할 경우도 매우 많다. 상식과 신앙이 조화를 잘 이루어야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집안을 청소하는 일을 가족들이 분담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을 내가 좀 더 많이 감당하더라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신앙이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상식 이하의 행동과 수준을 일삼거나 묵인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