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편지
크리스마스 카드
눈이 쌀밥처럼 내리던 12월. 형과 함께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곤 했다.
모아둔 동전들을 털어 내자 근처 전파사의 캐럴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가사도 잘 모르는 징글오도바이를 타고 실버벨을 목청껏 울려 대며 잿빛 거리를 짓달려 가면 형형색색의 장식품들이 가득한 문구점이 우리의 동전을 향해 입을 쩍 벌리고 오색 모루를 토하며 웃었다. 이럴 때는 함박눈이라도 내려 주면 더 좋지만 질척이는 진눈깨비가 일쑤였다.
재료를 구입하여 돌아와 연탄불 미지근한 아랫목은 누나에게 뺐기고 윗목에 나란히 엎드려 제작에 착수했다. 두꺼운 아트지를 오리면 스걱스걱 보물 상자가 열리고 작은 네모난 종이를 자르면 사각사각 미키마우스가 꼭지만 남은 사과를 갉아먹는 소리가 났다. 형은 붓으로 흰빛의 정갈한 나라를 만들어 갔다. 산을 세우고 교회당을 짓고 거기로 향하는 좁은 길도 살짝 구부려 그렸다. 마른 나무 한 그루를 심자 불쑥 두 사람이 길 위에 나타났다. 우리의 볼에 돋을볕이 번졌다. 발자국을 남기며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는 남녀가 손잡고 걷는 동안 된바람이 후욱 몰아치더니 붓 끝에서 점점이 눈발이 흩어졌다. 눈송이들은 별이 되고 새가 되어 날아다녔다.
물풀을 가는 붓에 묻혀 메리크리스마스라고 쓰고 속지에는 말뜻도 모른 채 ‘聖誕과 새해를 맞이하여 尊堂의 萬福을 비나이다.’라고 그려 넣었다. 금색가루를 흩뿌리고 털어 내니 형의 얼굴도 이미 황금빛이었다. 나라는 완성되고 백성은 기뻤다. 무채색의 배고픈 하늘이 애먼 앞산을 붙들고 내려와 골목 앞을 턱 막아서던 겨울. 꼭 누군가에게 보내리라는 계획도 없었고 몇 장 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종일토록 엎드려 카드를 만들었다.
그런 날 밤이면 늘 이불 속에서 삐거덕, 삭은 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쩔렁쩔렁 순록의 방울 소리가 요란하게 문 앞에서 멈출 때 등불을 켠 눈부신 금빛 썰매는 도착했다. 천지에 쏟아져 내리는 흰 눈송이들을 헤치며 형과 나는 새로 만든 크리스마스카드를 품고 그리운 사람들이 사는 따뜻한 마을로 세월처럼 날아갔다.
박부민 국장 nasaret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