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새 이름_민 진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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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새 이름

민 진 사모_늘푸른교회

울타리마다 장미가 피고 하얀 아카시아 꽃잎들도 멀리까지 향기를 날려보내
고 있는 계절의 여왕 5월이다. 이 계절만 되면 한번씩 되짚어 보는 ‘가족이
란 무엇인가?’란 물음이 길들여진 생각처럼 빤히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 
일상에 쫓겨 정신 없이 살다가도 5월만 되면 생각나는 것이 가족의 소중함이
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슨 날, 무슨 날을 정하는가 싶기도 하지만.

가족의 소중함 더해져

시대에 따라서 가족 구성원이 여러 모양으로 바뀌고 있다. 이혼 가정이 늘면
서 할머니나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아이들이 생기고, 모자가정이 생기고, 
새 엄마나 새 아빠를 자기들 의견과는 상관없이 맞이해야 하는 아이들이 늘
고 있다. 또한 새로운 복지 정책의 하나로 부모를 여윈 아이들이나 부모가 
키울 수 없는 아이들이 시설에 보내지기보다는 가정에 위탁 보호되는 것도 
달라진 모습이다. 
이런 여러 상황들 속에서 교회는, 아니 그리스도인들은 어떻
게 이 과제들을 
풀어 나가야 하는지 생각해야 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상적인 가정이 
해체되고 있는 이 갈등 구조를 어떻게 바라보아야만 하는지? 이제는 혈연 중
심에서 필요를 따라 가족 구성원이 바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들은 어
떻게 교회를 섬기고, 지역을 섬겨야 하는지 깊이 기도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 집 아이들은 모두 여섯이다. 내가 낳은 아이는 넷이요 부모를 여위어 
위탁보호하고 있는 아이가 둘이다. 요즘은 워낙 아이를 다산하는 목회자들
도 많고 아이들을 여럿 입양하여 키우는 훌륭한 분들이 많기에 나는 명함도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여섯 아이들 모두 건강하고 밝게 잘 자라고 있다. 그렇지
만 가끔 내 마음에서 그들을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함으로 괴로워 할 때가 
있다. 이것은 나의 현실이다. 주님의 원하심과 나의 욕구 사이에서 갈등의 
폭을 줄여 나가려고 애는 쓰고 있으나 쉬운 일이 아님을 2년 정도 키우면서 
경험하고 있다.

때론 낳은 아이들에게 가끔은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개척교회에서 연
년생을 셋이나 낳
을 때 곱지 않는 눈으로 바라보던 시선들을 뒤로하고 키우
면서도, 다른 집에 놀러 한번 속 시원하게 가볼 수 없었던 아이들이 이제 여
섯이란 이름으로는 더욱 여러 가지로 곤란할 때가 있다. 
시댁에 갈 때에 어른들과 친지들에게 보이는 눈치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른다. 어려운 생활 가운데서 부모님에게 잘 하지도 못하면서 아이들만 우
르르 몰고 가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물론 더 어려운 분들에 비하면 아무 것
도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 새로운 가족이 둘이나 더 생긴 것은 좋기도 하지
만 때론 부담되고 힘들 때도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얼마 전 한 통의 전화는 나에게 충격이었다. 며칠을 생각하며 고민 할 수밖
에 없던 그 전화의 주인공은 주일학교 나오는 남매의 엄마였다. 불행한 그 
아이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므로 할머니에게 맞겨 졌고, 할머니까지 돌아가
시자 작은 아빠 집에서 1년 반정도 살았고, 아이들을 키우던 분들이 외할머
니 집 앞에 데려다놓고 간 아이들을 이 엄마가 거둔지 몇 개월 되었다. 
그 엄마는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아이들 때문에 새 남편과 자꾸 싸우게 된다
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입양을 보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화로 한 것이
다. 그래서 며칠을 생각하다가 그 아이들 엄마를 만나서 어렵지만 같이 키우
자고 설득을 했다. 며칠 후 통화를 해보니 계속 키우기로 했단다.

자기 자식도 버리겠다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 아이들은 우리의 가족
으로 살아야 만이 잘 커 나갈 수 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을 끊임없이 알게 해 주어야 한다. 기분 내킬 때만이 아니고 지속적인 사랑
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 인간의 사랑을 뛰어 넘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어렸
을 때부터 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지속적 사랑이 묘약

가족 구성원의 변화가 요구되는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 사랑 받고 자랄 때
에만 바르게 자라는, 사랑에 굶주린 아이들이 주변에 서성이고 있다. 옆집
을 살펴야 하고 지역을 살펴야 하는 때가 되었다. 교회들이, 아니 우리 그리
스도인들에게 가족이란 새 이름으로 받아들여야 할 사람들을 찾아 보듬어 안
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