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원근법
< 조봉희 목사, 지구촌교회 >
“직선적으로만 보는 사람은 평면만 보고 이면은 볼 수 없어”
최근에 「직선형 인간과 곡선형 인간의 차이점」을 잘 대비시켜주는 글을 읽으며 너무나 큰 깨달음을 받았다. 그래서 그 동안의 목회와 삶을 반추하며 가슴 깊이 적용해 본다.
오스트리아 화가 훈데르트바서는 “직선에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직선이란 우회를 용납하지 않는 완고함을 말한다. 즉, 자기 포기를 용납하지 않는 고루함이다. 다른 사람을 살피거나 배려할 줄 모르고 앞만 향해 달려가는 마음이다. 앞만 보는 목표 지향적으로 추진하기에 옆을 보지 못하는 좁은 시야에 갇히는 것이다.
이처럼 직선적인 마음은 모든 것을 자기 기준에 따라 밀고, 끌고, 잡아당기고, 주무르려한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가끔 하나님마저도 뜯어고치려든다. 그러나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대부분 직선이 아니다. 아름다운 것들일수록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의 몸, 우리 마음의 결, 우리 삶의 현실은 직선보다는 곡선에 해당한다. 요즘은 건축 양식도 곡선 지향적이다. 비행기나 자동차도 곡선으로 처리되어야 바람의 저항을 덜 받게 된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나선형으로 이루어진다. 인생 자체가 구부러진 결을 따라 이루어져 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길을 가다보면 이따금 우회도로나 외곽도로를 타야할 때가 있다. 직선으로 가면 거리는 단축 될지 모르나, 오히려 우회도로가 더 빠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공사 중인 도로에는 ‘돌아가세요’(de tour)라는 푯말이 있다. 인생은 때때로 자기가 정한 노선도 바꿀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세찬 바람이 불 때 자기를 굽히거나 숙일 줄 아는 나무는 부러지지 않는다. 유연성 덕분이다. 반면에 자신의 든든함만 믿고 뻣뻣하게 저항하는 나무는 어느 순간에 부러지고 만다. 뒤로 물러서거나 양보하지 않는 완고함 때문이다.
부드러워야 부러지지 않는다. 겸허하게 수용해야 다치거나 상처받지 않는다. 마음 자세가 뻣뻣하여 접지 못하는 만큼 스스로 구겨지고, 큰 상처를 받는다. 특히 구약성경을 보면 그처럼 완전무결하신 하나님도 자주자주 자기 뜻을 굽히시거나 접으신다.
“뜻을 돌이켜서 계획을 바꾸셨다”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하나님도 진짜 후회하시는 불완전한 분이라는 뜻일까? 이것은 하나님의 유연성을 의인법으로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자신이 정한 궤도를 수시로 수정하신다. 이런 측면에서 직선에는 하나님이 없다는 뜻이다.
진리에 관해 말하는 사람 중에 필요 이상으로 울타리를 치고, 금 긋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네 편 내 편 따지며 진리의 범위를 정하기에 바쁜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진리의 울타리를 꽁꽁 둘러치고는 예수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한다. 진리를 사랑한답시고 그 영역을 정하고, 포용 없는 태도로 다른 사람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진리의 영역을 정하는 것보다 우리가 의로운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 자꾸만 진리와 진리 아닌 것을 편협하게 규정하고자 하는 조악한 즐거움이 우리의 인격을 병들게 한다. 그래서 ‘교리의 청결’을 ‘마음의 청결’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면, 우리의 만남에는 기껏해야 판단만이 있을 뿐, 사랑은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이 율법주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 6절에서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사랑을 강조한다. 사랑 없는 교리나 진리는 생명도 없고, 행복도 없게 만든다. 세계 최고의 심장전문 의사 중 한 분인 정수영 박사가 쓴 〈심장이 뛴다〉라는 책에서 그는 이런 도전을 한다.
“사랑 없는 교인 100명이 사랑 없는 교인 200명이 된다고 하나님 나라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공동묘지에도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데….” 나로서는 엄청난 충격적 깨달음을 얻으며, 나의 목회와 교회 현장을 가슴 깊이 돌아보게 되었다.
하나님은 ‘자기만의 의로움’으로 가득한 분노를 품고 있는 직선의 사람보다는 ‘자기만의 부족함’ 때문에 고뇌하는 겸손의 사람을 편들어 주신다. 하나님은 흠잡을 데 없는 바리새인의 기도보다는 자신의 부끄러움과 수치 때문에 고개조차 들지 못하는 세리의 기도를 기꺼이 응답해 주신다.
하나님은 보무가 당당한 직선의 사람보다는, 자신의 허점 때문에 허리조차 곧게 펴지 못하는 곡선형의 사람을 불쌍히 여겨주신다. 하나님 앞에서는 곧음도 필요하지만, 굽음이 더욱 중요하다.
바빌로니아의 〈탈무드〉에 “참회하는 자가 선 자리에는 완전한 의인도 감히 설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하나님 앞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완벽한 자가 의인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을 고백하는 자가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사람은 자기가 정한 기준에 따라 올곧음만 주장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곤궁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스스로 굽히고, 구부릴 줄 아는 자의 편에 서주신다. 이런 측면에서 직선에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 얼마 전에 유럽 유학생수련회에서 홍정길 목사님과 대화하던 중 매우 중요한 진리를 깨달았다. 직선적으로만 보는 사람은 평면만 본다. 이면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이해의 폭이 좁다. 자기가 보는 관점에 동의하지 않으면 틀린 것이다. 이것이 직선적 사고의 한계다.
반면에 곡선의 시각으로 보는 사람은 모든 것들을 입체적으로 보게 된다. 폭넓은 시야로 전체를 보며 살아간다. 서로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면이 있음을 보게 된다. 자기가 보는 것보다 다른 면이 훨씬 더 많음을 보게 된다. 그래서 자기 주관에서 객관으로 뛰어넘게 된다. 그만큼 가슴이 넓은 사람이 되고, 인격이 큰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큰 심장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곡선과 입체적으로 보시기에 우리를 이해해주시고, 있는 그대로 용납해주신다. 우리의 단편적인 모습 때문에 포기하지 않으시고, 큰 은혜의 섭리를 따라 우리를 오래 참아주시며, 그분의 작품으로 빚어가신다. 그분의 구도에 따라 차근차근 그려가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근법이다.
결론적으로 묻고 싶다. 당신은 직선형인가, 곡선형인가? 자기 것만 주장하거나 고집하는 단세포적 평면 지향적인가, 다른 사람의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입체 지향적인가? 오늘 우리도 모든 것을 하나님의 원근법으로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