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부활에 대한 묵상 | 고전 15:3-4_장귀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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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부활에 대한 묵상 | 고전 15:3-4

“부활로의 중심 이동”

장귀복 목사/새일산교회

중심이란 ‘사물이나 행동에서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부분’을 가리킨다. 그
런데 우리가 삶에서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인생을 살아갈 
때, 돈, 가정, 친구, 직장 등 모든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들 중 어디
에 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그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가 달라진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전도, 봉사, 찬양, 교육 등 신앙인이 감당해야 할 영역이 많이 
있다. 그런데 이중 어디에 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그의 신앙 스타일이 달라진
다. 

기도도 그렇다. 기도의 내용에 흔히 찬송, 감사, 중보, 간구, 회개가 포함된
다. 그런데 그 중에 어디에 강조점을 두느냐에 따라 그의 신앙생활의 모습
이 달라진다. 주로 간구와 회개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과, 찬송과 감사에 초
점이 맞추는 사람의 모습은 분명 다르다. 신앙인이라면 모든 것을 균형 있
게 잘해야 하지만, 인간의 연약함
으로 인해 어느 부분에 중심이 실리기 마련
이다. 그럴 때 어디에 우선적 관심을 두느냐는 너무도 중요하다.

1. 기독교의 중심: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라는 바울 
사도의 말씀에서 ‘먼저’는 시간적 개념이 아니다. 만일 시간적 순서라면 
바울이 복음을 받은 후 가장 먼저 고린도교회에 복음을 전했다는 말이 된
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이 말은 중요성의 개념, 즉 우선순위의 문
제를 말한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시면서 많은 일을 하셨다. 병자를 고치시고, 가난한 자
의 친구가 되시고, 성전을 청결케 하시고, 부정부패를 꾸짖으셨다. 예수께
서 행하신 이런 많은 일들이 우리에게 전해졌지만 그 중에 우리가 가장 먼
저 전해야 할 내용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다. 그래
서 바울은 예수님에 관한 많은 내용 중 죽음과 부활을 가장 먼저 전하고 있
다. 죽음과 부활, 이것은 기독교의 두 기둥이다. 이중 하나만 없어도 기독교
는 존재할 수가 없다. 

2. 부활 중심의 신앙: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분리해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는 우리의 신앙
의 모습을 좌우한다. 주의 죽
으심, 십자가, 고난, 사죄에 초점을 맞추는 신앙 스타일과, 부활, 생명, 희
망, 권능, 승리에 초점을 맞추는 신앙 스타일은 분명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우리의 신앙은 부활보다는 십자가에 치우쳐 있는 것 같다. 그래
서 ‘부활로의 중심 이동’이란 제목을 잡았다. 그래야 치우친 신앙에 균형
을 잡을 수 있겠기 때문이다. 

어느 목사님이 주일 예배 순서에 부활절 찬송가를 몇 곡 넣었더니 인쇄소에
서 부활절이 아닌데 부활절 찬송이 들어갔다며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연락
이 왔단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매주일이 부활주일’이라고 답
했단다. 부활절에만 부활 설교를 하고 부활 찬송을 부른다. 고난주간 특별기
도회는 있어도 부활주간 특별기도회는 없다. 

엄밀히 말해 복음, 즉 ‘기쁜 소식’은 메시아가 오셨다는 것과 예수께서 부
활하셨다는 이 두 가지다. 사실 제자들에게 주의 죽으심은 복음이 아니었
다. 오히려 그것은 슬픈 소식이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니 얼
마나 기쁜 소식인가. 그래서 사도행전에 보면 제자들이 전한 소식의 핵심은 
부활이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은 주의 죽으심뿐만 아니라 부활을 말하고 있다. 십자
가는 부활을 향한 것이다. 십자가 신앙에서 멈추는 것은 불완전한 신앙이
다. 신앙의 목표는 십자가가 아니라 부활이다. 신앙은 예수께서 내 죄를 사
하시고 구원해 주신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삶 속에서 나와 함께 하시며 풍
성한 삶을 허락하시고 악한 세상에서 승리하도록 해주는 것은 부활신앙이다.
그럼에도 이 부활신앙을 부활절에만 생각하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왜 평소 
주일에 부활 설교를 하고 부활절 찬송을 부르지 않는가? 그래서 우리 신앙
의 중심을 부활로 이동시킬 필요가 있다. 십자가를 지나 부활로 나아가야 한
다. 

3. 결론: 흔히 부활의 초점을 예수께서 부활하신 역사적 사건에 맞춘다. 한 
발 더 나가면 미래에 있을 성도의 부활에 맞춘다. 잘못된 것은 아니나 부활
신앙의 중심은 ‘지금 여기에서’(now & here) 역사하는 주님의 능력이어야 
한다. 그때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라고 진
심으로 고백할 수 있다.

안식일이 주일로 바뀐 것은 주님의 부활 때문이다. 우리는 매주일 예배를 드
릴 때마다 
주님의 부활을 생각하며, 지금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
고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한다. 우리의 
신앙의 중심을 십자가 신앙에서 부활신앙으로, 과거나 미래의 부활이 아닌 
현재 지금의 삶에서 역사하는 부활의 능력으로 중심 이동시켜야 한다. 그럴 
때 신앙의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