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과 목회 현장 신앙이 성령 안에서 일치되기를
박종언 목사(총회총무)
새 천년이 온다고, 서기 2000년이 된다고 세상이 소란스러웠는데 어느새 2005
년이다.
“주의 날이 더 가까워졌다는 의미다. 내가 주께로 가는 날이 가깝다는 의미
다”.
평소에도 이런 말을 하면 별로 좋은 소리로 듣지 않는 성도들이 있는데 신년
벽두에 무슨 이런 말을 하나하고 혹 언짢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까 잠시 생
각했지만 어쩔 수 없이 늘 하는 나의 생각이다.
하루가 시작되는 새벽이면 “오늘도 새 날을 주시고 새 생명 주신 것을 감사합
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는 기회 주신 것을 감사합니
다”는 기도가 내 모든 기도의 시작이고 보면, 2005년 새해가 시작되는 아침
도 역시, 아니 더 새로운 마음으로 주의 날이 가까움을 생각하게 된다.
사업을 할 때는 “연약한 자의 짐을 담당하라”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배고픈 사
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려고
열심히 일했다. 사업을 하면서 신학교 청강생일
때는 같은 말씀을 생각하면서 만나게 되는 신학생들, 전도사들에게 맛있는 식
사를 대접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큰 기쁨이었고, 교회를 시작하고
는 말씀대로 살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성도들을 대신해서 울었다.
총회 총무의 직임을 지난 2년 동안 수행하면서는 자립하지 못한 교회, 복음
을 전할 목회지가 없는 목사들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더 마음이 무거운 것
은, ‘합신’ 안에도 세상에서의 형통함이 복이라는 혼돈케 하는 세상의 사조
가 흘러 들어온 것 같아서다.
교인들이 믿음이 자라고 견고한 신앙인으로 사회에서도 주님의 자녀다움을 드
러내는 그런 성장은 감사하지 않고, ‘생명이 있는 교회는 큰다’고 교인의 수
가 늘어나지 않으면 성장을 멈춘, 생명이 없는 교회 같이 여기고 스스로 실의
에 빠지는 목회자들을 보기 때문이다.
열심히 감사함으로 작은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이 있는가 하면 ‘그래도 무언
가 하나님 앞에서…’ 하고 마치 번뇌케 하는 안위자들처럼 고개를 갸웃거리
는 동료 목회자들을 보기 때문이다.
‘그래도 많은 성
도를 맡기실만한 무엇이 내게 있다’고 머리를 드는 목회자들
때문이다.
유학을 떠나서 경제적인 문제로 학업을 포기하는 동문들, 선교 현지에서 자녀
를 교육하며 힘들게 사역하는 선교사들과 현지인을 돕는 것이라며 여러 사람
을 종으로 부리고 사는 부요한 선교사들 때문이다.
일하는 것이 맘에 안 들어서, 또는 예산이 줄어서 가정 있는 부교역자를 고민
도 하지 않고 자르는 목회자들과 사례비가 적어서 불성실하게 일하는 것을 당
연히 생각하는 부교역자를 보기 때문이다.
“바른 신학, 바른 생활, 바른 교회”를 목표로 열중하던 신학생들이 목회 현장
에서는 좌표를 잃은 것 같이 흔들리거나 힘겨워하는 목회자들을 만나기 때문
이다.
평신도 시절에 목사는 ‘특별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여기며 섬기던 마음에
더하여 나를 주의 종으로 세워 교회를 섬기게 하시고 총무의 직임으로 교단
과 교계를 섬기게 하시니 보이는 모든 것이 더욱 두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2005년. 새해에는 합신 교단의 목회자들과 합동신학교의 교수님들이 한 성령
안에서 마음을 맞대고, 머리를 맞대고 ‘합신’을 위해서 기도하기
를 원한다.
신학교는 목사가 되기 위해서 자격을 얻기 위한 단순한 과정이 아니다. ‘바
른 신학’을 배우고 정립하고 새겨야 한다. 3년 동안 합동신학교의 교육으로
바른 신학을 깨닫기는 어렵다. 인격이 변화되어 바른 생활을 하기는 더 어렵
다. 바른 교회로 이끌어가기에는 또 얼마나 부족한가? 합신의 목회자들이 목
회현장에서 바른 신학으로 바른 생활을 가르치고 바른 교회로 성장하도록 지
속적인 평생교육의 장이 열리기를 기도한다. 합동신학교의 신학과 합신 교단
목회현장의 신앙이 성령 안에서 일치되어야 한다.
교단에 속한 교회가 모두 자립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한국기독교계 안에서 견고하게 서서 높이 횃불을 밝히는 ‘합신’이 되기를 기
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