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수상사람의 다스림 받는 정원 _박종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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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수상사람의 다스림 받는 정원

 

< 박종훈 목사, 궁산교회 >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다스림 받는 것이 사람의 영원한 행복”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항상 아쉬운 것은 집터가 작아 그 흔한 실과나무나 예쁜 꽃 하나 심고 가꿀 수 없었던 점이다. 마당은 있지만 한쪽에는 돼지우리가 차지하고 그 옆에는 두엄이 쌓여있다. 나머지 공간은 비어두어야만 가을에 벼를 탈곡하는 장소로 사용한다.

 

그나마 작은 화단이라도 조성할 수 있는 곳은 뒤뜰이어서 뭔가를 심어봤지만 번번이 실패를 했다. 주변에 대나무 밭이 있고 초가집 그늘에 가려 식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했던 이유였다. 당시에는 이 상식을 몰랐고 계속되는 실패에 집터가 작은 것만 불평했다. 그때부터 마음속에 한 꿈이 심어졌다. 장차 내 집을 가지면 넓은 정원에 마음껏 꽃과 나무를 가꾸리라고…….

 

사람은 기본 욕구가 부족할 때 자연적으로 꿈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은 꿈이 없다고 한다. 이 말은 웬만한 것은 다 충족되는 시대에서 부족함 없이 자라는 환경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월은 흘러 고향을 떠나서 서울에서 신학교를 다니며 상가건물 옥탑 방에서 잠시 살던 때가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회색빛 콘크리트 모습이고 땅을 밟아도 신기할 정도로 흙이 묻어나지 않는 인공적인 길로만 다니게 되었다. 이럴수록 마음속에는 흙냄새가 그리워지며 하다못해 콘크리트 건물 사이로 악착같이 자라는 잡초라도 반갑게 느껴졌다.

 

자연을 사모하는 마음에 옥상의 한 구석에 스티로폼 박스로 귀한 흙을 힘들게 준비하여 채소를 키웠다. 모종을 구해다 심고 돌보면 자라는 그 싹들이 얼마나 기쁨을 주는지, 이렇게라도 해야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해소될 것 같았다.

 

신학과정을 마치고 시골로 개척할 장소를 탐색하는 중, 지금의 자리를 보게 되었다. 다른 여러 조건도 맘에 들었지만 특별히 정원이 내 마음을 들뜨게 하였다. 먼저 살던 주인이 꽃과 나무를 비롯하여 여러 과일나무를 잘 조성해놓았다. 작은 텃밭과 아울러 돌담을 끼고 감나무, 사과나무, 석류나무, 앵두나무, 자두나무와 은행나무, 향나무, 벚나무 등 다양한 꽃과 상록수가 심어져 있었다.

 

맘속에 그리던 정원이 나를 위해 준비되어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더 고민할 것도 없이 구입하기로 하고 귀촌하기로 결정했다. 사월 초에 이사 오는데 이미 여러 꽃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내와 한창 개구쟁이인 큰아들 녀석과 이제 막 돌 지난 딸과 함께 그토록 바랐던 전원생활과 함께 농촌 주민들과 더불어 살면서 복음을 전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로서는 물을 만난 고기처럼 열심히 신나게 마음껏 심고 가꾸고 복음전하며 봉사의 즐거움을 누렸다.

 

사실 농촌교회 개척의 고통과 외로움과 여러 갈등은 항상 있지만 그런 중에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지만, 그 다음은 정원을 돌보는 즐거움이 오래 인내하는 힘이 된 것 같다.

 

사람과 달리 노력하고 정성을 드린 만큼 보답을 해주는 꽃과 나무들의 정직한 모습은 어떤 나무는 우산 모양으로, 어떤 나무는 무지개를 닮은 형태로, 다른 나무는 접시 같은 모습으로 또 다른 나무는 물결 형상으로 조금씩 멋을 이루어간다.

 

그렇게 십여 년이 훌쩍 지나갔다. 그런데 어느 날 나무들을 관리하기가 힘들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 넓지 않는 터에 건물과 잔디마당을 포함하여 사계절마다 다양한 꽃을 보도록 여러 종류의 꽃과 나무를 심다보니 자리다툼을 해야 했다.

 

지나친 크기는 다른 식물들에게 해를 주기 때문에 늘 적당하게 자르고 억제를 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키가 큰 나무들은 클수록 세력이 강해지면서 손이 닿지 않아 관리가 어렵게 된다. 주인의 손질을 자주할 수 없으므로 제 멋대로 자라면서 전체적인 균형을 깨는 것을 발견케 되었다.

 

그때서야 평범한 교훈을 주는 깨달음이 마음에 와 닿았다. 아무리 좋아도 적당한 제어를 받을 수 있어야만 진정한 그 가치와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정원지기의 관리를 받아야만 나무들은 해가 갈수록 그 진가를 발휘하리라 여긴다.

 

마을 뒷산에는 외래종인 ‘리기다’ 소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 특징은 한국 소나무보다 훨씬 빨리 자라지만 적당한 간벌(間伐)이 안 되어 같은 소나무끼리 경쟁해야하고, 밑에는 여러 활엽잡목들이 치열하게 다투며 위협하므로 햇볕을 향해 자꾸 위로만 솟구쳐 오른다. 그로인해 상대적으로 뿌리가 약해서 심한 태풍이 오면 일시에 쓰러지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관리를 받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은 모두가 공멸(攻滅)할 수 있는 위태함을 느낀다. 우리 인간의 삶에도 다스림 받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하리라 여긴다.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부족함보다 못하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떠오른다. 성경말씀에도 성령의 일곱 가지 열매 중 가장 마지막 열매는 ‘절제’라고 기록되어 있다.

 

빠른 속도와 편리함을 자랑하는 고급 승용차라도 제동장치가 미흡하면 치명적인 결함이 되기도 한다. 좀 더 빠르게 좀 더 크고 좀 더 편리한 그 어떤 문명의 혜택이 있다 해도 제어할 수 없는 장치라면 오히려 더 큰 고통과 해로움이 될 것이다. 사람의 삶에도 절제하지 못하는 온갖 욕심은 결국에는 파멸로 이르는 역사적인 교훈은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작은 정원이지만 사람의 다스림을 받아야만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잃어버린 에덴동산도 처음에는 아담의 다스림으로 인해 행복한 낙원이었고 또한 창조주의 본래 의도하신 목적이었다.

 

사람도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다스림 받는 것이 영원한 행복이건만 풍요한 중에서도 더 가지고자 하는 욕심과, 그 욕심을 절제하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부하므로 인간의 모든 고통과 불행의 씨앗이 된 것이다.

 

앞으로 이 세상은 갈수록 더욱 풍요와 편리함과 만족케 하는 추세로 가겠지만 절제야말로 이 시대에 가장 합당한 미덕임을 작은 정원을 가꾸며 느껴본다. 나의 맘속에도 늘 주님의 다스림으로 인해 선한 도구로 쓰임받기를 위해 오늘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