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나그네
| 이기종 목사, 합신세계선교회 총무 |
“고 장승필 선교사는 필리핀 이주 노동자의 친구”
모든 인생은 나그네의 삶이다. 특히 선교사들은 더 그러하다. 주님의 부르심
이 있으면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돼 있는 것이 선교사들의 삶이다. 이러한
생활을 즐기고 누리며 사는 이들은 나그네로서 행복한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다.
레바논 공원묘지에 묻힌 선교사들
흔히 우리는 중동 하면 당연히 이슬람국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중동 레바
논에도 우리나라의 양화진과 비슷한 외국인 선교사묘지 공원이 있다는 것은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1800년대 말에 그 땅에 들어와 활동했던 선교사들과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묻힌 그 자녀들의 묘지이다. 초기 아랍어 성경 번역자의 묘도 있으며, 1886
년에 창립된 명문 대학인 베이루트 아메리칸 대학의 설립자도 바로 이 공원
에 묻혀 있다. 분명 그 땅에도 복음을 들고 전파한 선교사들이 있었던 것이
다.
규모가 작고 관
리가 허술하긴 하지만 그곳에 가면 양화진에서와 같은 감동
을 받게 된다. 언더우드, 아펜젤러, 셔우드 홀 같이 우리나라에 왔던 초창
기 선교사들이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섬겼던 것처럼 레바논 땅에서 살다가
묻힌 그들도 같은 심정으로 그 나라에서 사역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기꺼
이 고국이 아닌 선교지에서 나그네의 삶을 마친 것이다.
모든 선교사들은 시대를 넘어서 자신이 섬기는 나라나 민족을 사랑하다가
그 땅에 묻히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양화진 묘지에서 이런 비문을
볼 수 있다.
“나에게 천의 생명이 주어진다 해도 그 모두를 한국에 바치리라”
(R. R. 켄드릭)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보다 한국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H. B. 헐버트)
최근 소천한 우리 교단의 장승필 선교사가 떠오른다. 그는 미국에서의 이민
생활을 통해 외국인 근로자의 힘겹고 고통스런 삶을 몸소 겪었기 때문에, 그
들의 아픔과 필요를 알았기에 자신의 삶을 헌신했다. 그래서 합신을 졸업한
후에 국내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을 14년간 섬겼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이방인으로써 겪을 수밖에 없는 아픔과 애환
가운데서도
참된 소망을 발견하도록 도와주고자 했던 그는 복음전도와 제자양육에 힘썼
다. 서울 가리봉동과 경기도 마석의 가구공단 내에 교회를 세워 그들과 동고
동락하며 그들의 친구와 형제가 돼 주었다. 밤늦게 유해가 도착할 때까지 기
다리는 30여명의 필리핀 형제자매들의 모습과 조용히 흐느끼는 그들의 눈물
속에서 그가 평소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위로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필리핀 사람들의 지속적인 신
앙생활과 생활기반을 위해서 망고농장을 마련하여 그들과 함께 농지개간을
하던 중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그는 늘 자신이 죽으면 그 땅에 묻히기를 바
란다고 말하곤 했다. 그의 말대로 그토록 사랑하던 사람들의 땅인 필리핀의
망고나무 아래 한줌의 재로 드려졌다.
그는 나그네와 외국인의 아픔을 알고 그들과 삶을 함께하고, 이 땅위의 삶
을 마감한 진정한 선교사였다. 그들 곁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늘 행복한
나그네였다.
헌신했던 선교지 땅에 묻히기 원해
비록 번듯한 선교사 공원묘지에 묻히지도 않았고 조그만 비석조차 없지만,
필리핀과 그 민족을 그토록 사랑했던 그의 생애와 죽음은 후일 필리핀 망고
농장에 들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잔잔한 감동으로 남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