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나무
박종훈 목사/ 궁산교회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누리는 많은 즐거움과 유익은 그냥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고 그 대가를 지불했었기에 주어지며 받
아 누리는 것이다. 이것은 인생의 길이나 자연의 법칙에도 어김없이 이어지
고 있다.
집 주위에 자라는 감나무를 비롯하여 여러 실과(實果)들은 이 겨울에 죽은 듯
이 앙상한 가지만 남겨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새로운 움이 트고 그 나무에
맞는 옷을 입을 것이다. 그 앙증스런 싹이 돋기 전에 가지치기를 해 준다. 그
때는 나무가 몸살하지도 않고 병균도 침범하지 않을 가장 적당한 시기이다.
가지치기 대상은 지난해에 웃자랐던 가지, 균형을 헤치는 가지 그리고 병들
고 썩은 가지들이다. 자라는 대로 그냥 내버려두면 부족한 영양분이 모두 가
지로만 모여들어 실한 열매보다는 잎과 가지만 무성히 자라는 기형아가 돼 버
린다.
올해도 가지치기를 하며 지난해
처럼 다발로 묶어서 한 쪽에 모아놓았다. 이
제 한 해가 지나는 동안에 햇볕에 잘 말라서 땔감으로 쓰기에 적합한 상태가
된다.
오후 한 나절을 가지치는 작업을 하지만 힘든 줄 모르며 일하는 즐거움을 누
렸다. ‘노동은 곧 기도’라고 말했던 것처럼 나무와의 말없는 대화도 내 영혼
을 새롭게 해주며 삶의 활력을 불어 넣어주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에 일을 마치고 온돌방의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잘
말린 나뭇가지가 기다렸다는 듯이 잘도 타 들어간다. 가마솥에 물이 뜨거워지
면 욕실에 설치한 수도꼭지에서는 온수가 나와 땀 흘린 몸을 씻어준다. 제법
굵은 나무는 적당한 크기의 숯으로 활 활 타오르게 된다.
나무에 묻은 모든 껍질과 더러운 것도 타오르는 불 앞에 다 사라지고 정금 같
은 순수한 불덩이만 남아서 한 줌의 재가 되기까지 자신의 몸을 서로 태우는
것이다. 이때 부지깽이로 숯불을 약간 꺼낸 후 적쇠를 놓고 호일을 깔고 두껍
게 썰어놓은 돼지고기를 올리고서 고기를 굽는다. 여기에는 굵은 소금을 적당
히 뿌려놓으면 노릇노릇 익어간다.
기름이 타면서 나오는 연기는 아궁이 환풍기를
통해 굴뚝으로 빠져나간다. 도
시처럼 자주 외식(外食)은 못하지만 가끔 이러한 숯불고기 파티는 여기에서
만 누리는 생활의 즐거움의 하나이다. 고기를 굽고도 여전히 불길은 남아있
다.
이때 물 조리로 불을 끄면 그대로 시커먼 숯이 만들어진다. 이 숯은 자신이
자란 흙으로 가서 토양을 정화시키며 거름이 되어 그 일생을 마친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꽃과 열매를 주고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며 새
들의 보금자리가 되며 우리에게 신선한 산소를 준다. 다 자라면 우리 삶의 필
요한 목재가 되지만 잘려진가지도 이처럼 한 줌의 재가 되어 흙으로 돌아가기
까지 우리에게 따뜻한 물과 음식을 익혀주며 마지막 남은 숯까지도 유용하게
쓰여지도록 아낌없이 내어준다.
인간들의 이기와 개발의 논리로 무참하게 베어진 나무를 그대로 방치하는 모
습을 볼 때마다 인고의 세월을 자랐을 나무의 삶을 생각해 본다.
이제는 시골에도 편리한 기름 보일러를 사용하여 예전에는 남아나지 않던 숲
의 간벌된 나무들이 그대로 방치되고 또 쌓인 낙엽들로 인해 산불의 촉진제
가 되어 해마다 봄이 되면 산불비상이 걸린다.
고
유가 시대에 아낌없이 주는 무공해 나무들을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할 때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