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회자들께 드리는 간청 <디모데후서 4장 2절>
< 정창균 목사, 합신 설교학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
“역사를 이어간다는 차원에서 부교역자들에게 설교 기회 주시기를”
나는 감사하게도 설교를 많이 할 수 있는 교회에서 부교역자 사역을 하였습니다. 전임 전도사 시절부터 주일 저녁예배와 수요예배 설교는 물론 심지어 주일 오전 설교를 거의 정기적으로 하다시피 하였습니다.
담임 목사님은 예배 사회를 보시고 전도사인 내가 설교를 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내가 전도사 때부터 그렇게 설교를 잘 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한국교회를 위하여 잘 준비된 목회자 하나를 키우시겠다는 뜻을 품고 일부러 그런 기회들을 주셨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나는 목회현장에서 감당해야 할 교회의 모든 사역들을 경험해보는 배려를 받았습니다. 그 때 그 많은 설교들을 감당하면서 나는 설교로 몸부림을 치며 한편의 설교를 완성해내고, 다시 그것을 강단에서 외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설교에 대한 열정과 확신과 담대함을 갖추어가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어려운 지역에 있는 크지 않은 교회여서 경제적으로는 늘 어렵게 지내야 했지만, 내게 베풀어지는 그 배려가 주는 은혜의 풍성함에 비하면 그것은 사소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나는 그런 배려와 열정으로 어린 나를 키우신 그 분을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설교학 교수가 되어 목회자들을 상대로 세미나를 할 때도 간곡하게 부탁한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즉, 비록 양이 안차고 또 교인들이 불만을 토로할지라도 장차 어느 곳에선가 하나님의 교회를 책임져야 할 목회자를 키우는 책임을 감당한다는 사명감으로 부교역자들에게 설교할 기회를 많이 주시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담임 목사는 두 가지 점에서 매우 중요하고도 위대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담임하고 있는 그 교회를 책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갖는 매우 중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내가 맡고 있는 그 교회만이 아니라,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될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책임입니다.
내가 담임하고 있는 교회가 내가 은퇴할 때까지 건강하고 복되게 잘 자라가게 하는 것으로 담임목사의 책임이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교회가 한 하나님의 교회요, 그러므로 모든 교회의 역사가 주님 오실 때까지 잘 진행되어야 한다는 교회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나와 함께 일하는 부교역자들은 언젠가 어디에선가 그 교회의 역사 진행의 한 토막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란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이 그 때 그들에게 맡겨질 하나님의 교회의 역사의 한 토막을 책임지고 그 역사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으로 내가 준비시켜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의식해야 합니다. 이것이 담임목사가 걸머지고 있는 이중적 책임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는 말로 자기 이후의 한 시대의 교회를 책임질 사람으로 인정하고 내세우는 데는 그간 사도의 이러한 배려와 인식이 이 두 사람 사이에 작용해왔을 거란 사실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 자신도 목회하는 동안 부교역자들에게 가능하면 설교의 기회를 많이 주고자 하였습니다. 물론 “아무래도 목사님만 못해요” 하면서 부교역자들의 설교에 불만을 토로하는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그 말은 내가 설교를 잘한다는 칭찬의 말이 아니라, “당신이 설교하라”는 압력인 줄을 내가 모를 리 없었습니다.
나는 두세 번에 걸쳐 설교 시간에 교회 앞에 부탁하였습니다. “그나마 이정도 라도 되는 저의 설교를 여러분이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애송이 초년병 설교자였던 나의 설교를 참고 인내하면서 들어주었던 교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들을 것 없는 그 시절의 나의 설교를 참고 들어준 제가 부교역자로 있었던 그 교회 교인들의 덕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부교역자들도 내가 지내온 만큼 세월이 지난 후에는 지금의 저보다 확실히 더 나은 설교를 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섬기던 교회 교인들이 저의 설교를 인내하고 들어주며 기다려주어 여러분이 그 열매를 따고 있듯이, 이제는 여러분이 우리 부교역자들의 설교를 인내하며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세월이 지난 후에 어느 교회에선가 여러분이 기다려주고 들어주었던 그 열매를 다른 교회가 다시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 후로 우리 교인들은 마음에 흡족한 정도야 차이가 있었겠지만 그러나 누가 설교하든지 겉으로 불만을 토로하지도 않고, 듣기 힘들어 하지도 않고, 부교역자들의 설교에 이런 저런 트집을 잡지 않고 잘 들어주곤 하였습니다.
물론 부교역자 가운데 사람이 잘못된 이들이 종종 있어서, 담임 목사와 교인들의 이런 사려 깊은 배려를 배신하고 오히려 큰 상처와 문제를 일으키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에 대하여 나도 서운함과 배신감에서 오는 분노를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담임 목회자들께 나의 부탁을 간곡하게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