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 (84)| 찌르는 사람과 함께 있어주는 사람_정창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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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르는 사람과 함께 있어주는 사람 – 로마서 16장 1-16절

 

< 정창균 목사, 합신 설교학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

 

 

“찔러대는 교인들이 목회자로 하여금 겸손하게 하는 유익도 있어”

 

돌아가신 제 아버지께서 어릴 때부터 우리 8남매에게 자주하신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너희들은 목회에 거침이 되지 말아라. 목회에 거침이 되는 일에 가담하지를 말아라.”

 

이 말씀은 우리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그것도 자주 들어야 했던 말씀이었습니다. 저도 자식을 키우게 되자 저의 자녀들에게 할아버지에게 배운 것이라며 어려서부터 이것을 가르쳤습니다.

 

목회를 해보니 교인들이 목회자와 어떤 관계를 맺고 지내는가라는 점에서 볼 때 그 양상이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되었습니다. 목회자와 대척점에 서서 주로 반대하고 트집 잡으며 목회자를 찌르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목회자를 옹호하며 함께 있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목회자에게는 이 둘 모두 유익을 줍니다.

 

교인들 모두가 목회자와 함께 있어주는 사람들이어서 언제나 편들어주고 찬성해주고 떠받들어주면 목회가 순탄하고 효율적이고 또 교회 분위기도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만 지속된다면 목회자도 죄 된 본성을 가진 인간이어서 어느 대목에 이르러서는 교인들을 대하는 언사가 달라지고, 처신이 방자해지곤 합니다. 자신이 마치 하나님인 것처럼 행동하여 망할 곳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목회자가 하는 사역들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반대하고 또 목회자를 찔러대는 교인들이 있어서 목회자로 하여금 아파하게 하고, 더 기도하게 하고, 매사에 더 신중하게 하고, 그리하여 도리 없이 겸손하게 합니다. 찔러대는 사람들은 그렇게 목회자에게 유익을 줍니다.

 

그러나 교인 모두가 목회자와 대척점에 서고 목회자를 찔러대는 사람이 되면 목회자도 연약한 질그릇처럼 약한 존재여서 깨어져 무너져 내리고, 결국 목회 자체를 못하게 되고 맙니다. 그때 함께 있어주는 교인들이 있어서 버티며 힘을 얻고 지탱하면서 여전히 목회의 길을 갈 수 있게 됩니다. 함께 있어주는 이들은 그렇게 유익을 줍니다.

 

결국 목회자에게는 찌르는 교인이나, 편들어주는 교인이 다 유익하고 다 필요합니다. 그런데도 장로인 제 아버지는 평생 교인으로 살아가야 할 당신의 자식들에게 찔러서 유익을 주는 역할을 하지 말고, 함께 서있어 줌으로 유익을 주는 교인이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나도 내 자식들을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은 곰곰 생각해보면 사실 매우 위험한 요소를 그 안에 담고 있기도 합니다. 목회자이기 때문에 무조건 맹종해야 된다는 잘못된 신앙체질을 분별해내기가 어렵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정당한 판단과 신앙양심을 갖고 반대하는 이들을 목회자를 찌르고 반대하는 부정적인 체질의 사람으로 낙인을 찍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전자나 후자나 결국 교회와 신자와 목회자 전부를 망칠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로서는 찔러서 유익을 준 교인들보다는, 함께 있어줌으로 유익을 준 교인들이 더 애틋한 마음으로 기억이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찔러서 유익을 준 사람들이 “나만이라도 목회자를 반대하고 가시가 되어드려서 모두가 찬성함으로 목사님이 잘 못될 위험을 막고 목사님에게 유익을 드리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목회자와 그가 하는 일이 맘에 들지 않거나 감정적으로 싫어서 반대하고 찌르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서신들 첫머리에서 자주자주 어떤 사람들을 떠올리며 기도와 축복과 감사의 제목으로 드러내어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 모두가 그의 사역에 함께 있어줌으로 유익을 준 사람들입니다.

 

로마서의 마지막 장에서 사도 바울은 스무 명도 훨씬 더되는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나열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자신의 목회사역에 함께 서 있어주는 사람들이었는지를 회상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을 귀히 여기고, 이 사람들에게 문안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며 거대한 책 로마서를 마무리합니다. 그들은 사도의 가슴에 새겨진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던 셈입니다.

 

인생의 연륜이 길어지고, 목회사역의 연조가 깊어질수록 이런 사람들이 가슴에 남아있는 목회자라면 아무리 힘든 길을 지내왔어도 목회자로 평생을 사는 보람이 있을 것입니다. 세월이 지난 후, 함께 하나님의 나라와 눈에 보이는 교회를 섬겼던 영적인 지도자에게 이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감사의 제목이 되는 교인이라면 그것은 놀랍고 감동적인 복일 것입니다.

 

훈훈하고 애틋한 마음으로 가슴에 새겨지는 잊을 수 없는 교인들이 있는 목회자로, 그리고 목회자의 가슴에 감사와 축복의 제목이 되어 가슴에 새겨지는 교인으로 우리가 살 수만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함께 교회를 세워가면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