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 (72)| 선언적 개혁주의자와 실천적 개혁주의자_정창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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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적 개혁주의자와 실천적 개혁주의자 디모데전서 4:7

 

< 정창균 목사, 합신 설교학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 

 

“자기를 뜯어고치려는 몸부림 상실될 때 신학도 무너져”

 

 

제가 유학중일 때 아버지와 같은 저의 지도 교수께서 저를 앉혀놓고 수시로 하셨던 말씀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개혁주의자라는 것은 반드시 두 가지 방면으로 입증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첫째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곧, 우리는 어떤 신학전통 그리고 교회의 전통에 서 있는가로 우리가 개혁주의자라는 것이 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곧, 현재의 삶이 우리는 개혁주의자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우리에게는 우리가 물려받은 신학의 내용과 지금 살고 있는 삶이라는 두 날개로 우리가 개혁주의자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가슴에 꼭꼭 새겨두곤 하였습니다.

 

제가 그 어른의 이 가르침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떠올리는 것은,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만 내세워 우리가 개혁주의자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우리의 모습을 너무 자주 목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개혁주의는 주로 우리가 얼마나 성경적이고, 깊이 있고, 수준 높은 신학을 견지하고 있는 사람들인가를 부각시키는 자화자찬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아니면 칼끝을 돌려 다른 사람들을 매섭게 몰아붙이고 비판하고 그러다가 조롱하며 비난하는 데로 나아가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입을 열거나, 글을 쓰거나 첫 마디를 한국교회에 대한 비난으로 시작하는 몇몇의 사람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말과 글의 핵심은 언제나 한국교회가 얼마나 반개혁주의적인가를 지적하고 개탄하는 것이 주를 이룹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감동하고 열광하고 또 자랑스러워하는 개혁주의를 그들의 일상의 삶속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개혁주의를 외치는 선언만 있지 실천이 없는 개혁주의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남을 향한 매서운 비판과 매정한 정죄만 있지, 자기를 후려치는 자기 성찰이 없고, 자기를 뜯어고치려는 아픈 몸부림은 없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우리의 그러한 모습을 보며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교회가 나타나야 한다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그 길은 정통신학에서 떠나는 것이라고, 정통신학으로는 안 된다고 자신 있게 주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각광을 받으며 등장한 소위 이머징 교회의 핵심적인 주장 가운데 하나도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의 말처럼 정통개혁신학이 새로운 시대에는 적용력이 없어서 일어난 문제가 아닙니다. 개혁주의의 실패나 한계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 아니라, 오늘날의 개혁주의자들의 실패와 한계가 빚어낸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 실패의 핵심에는 개혁주의자들이 개혁주의를 실천하지 않은 것이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신학의 내용에는 감동하지만, 그 신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삶을 보고는 돌아서 버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개혁주의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전통의 내용이 무엇이고, 가치가 무엇이며, 그 요구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보존하고 전수할 뿐 아니라 우리는 그러한 신학전통에 서 있음을 확고하게 주장하고 선언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입니다.

 

저는 이러한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을 가리켜 나름대로 선언적 개혁주의자라고 부르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반쪽짜리 개혁주의자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개인의 일상의 삶이든지, 목회자의 목회 방식이든지, 노회든지, 총회든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떤 사고 방식과 원리로 일들을 처리하고 진행하는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일관되게 살아가는가, 무엇을 최우선의 기준으로 삼고 일들을 결정하는가를 보고 우리가 개혁주의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진정한 개혁주의자와 개혁주의 해설자는 엄밀히 구별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혁주의 해설자가 아닙니다. 개혁주의 실천자가 필요합니다. 저는 이러한 사람을 가리켜 나름대로 실천적 개혁주의자라고 부르곤 합니다. 선언적 개혁주의자에서 실천적 개혁주의자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개혁주의를 말하는 사람과 개혁주의를 행하는 사람은 같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때에 우리는 두 방면으로 입증되는 진정한 개혁주의자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