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14) 우리들의 모순_정창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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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14)
사도행전 11:1-3

우리들의 모순

정창균 목사_합신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수년 전,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서 방문 전도를 하면서 큰 충격과 상처를 받
은 적이 있었습니다. 충격은 교회 때문에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이 의외
로 많다는 사실 때문이었고, 상처는 그런 비난과 아픈 호소에 대하여 아무
런 대답할 말이 없을 만큼 우리 교회들이 세상 앞에서 초라해져버렸다는 사
실 때문이었습니다. 

세상 앞에서 초라해진 교회들

교회 밖의 세상 단체들이 이제는 우리가 이 나라의 교회들을 개혁해 주겠다
는 기세로 달려들고, 교회는 기껏해야 세상이 달라졌다거나 우리가 새로운 
형태의 핍박을 받고 있다는 궁색한 대답 정도 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을 목격
할 때마다 우리는 참으로 참담함을 느낍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가 이 사회로부터 당하는 불신과 치욕, 그로 말
미암아 하나님의 이름이 당하는 능욕, 우리 스스로의 자존감의 상실 등 우리

가 진통을 앓고 있는 이런 저런 아픔들의 핵심적인 문제는 결국 세상 때문
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 곧 교회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관아에 고소를 당한 사람이 야소교를 믿는 사람이면, 포승줄로 묶어서 잡아
오지 않고 아무 날 아무 시까지 관아로 나오라는 통지만 보내면 될 만큼 신
자들이 신뢰를 받는 때가 있었습니다. 뇌물을 주고 관직을 산 사람이 야소교
를 믿는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에 발령이 나면 임지를 바꾸어 달라고 조정
에 청원을 할 정도로 신자들이 부정을 용납하지 않는 삶으로 유명한 때가 있
었습니다. 
백여 년 전,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 온 초창기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교회
가 사회로부터 그렇게 신뢰를 받고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그때는 비율로 
따지면 사람 일만 명을 모아놓고 예수쟁이 손들라면 단 한 명이 손을 드는 
때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길가는 사람 너 댓 명만 모아놓고 물어봐도 그 
중에 한 명이 손을 드는 판입니다. 우리는 지금 교인을 늘리는 일과 교인으
로서의 삶을 사는 일이 얼마든지 아무런 관련 없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생
생한 현장을 보고 있습니다. 
영혼 구원을 위하여 헌신하겠다
며 나선 사람이 사실은 사람들이 교회로 나아
오는 데 결정적인 장애물이 되고, 교회를 위하여 살겠다고 나선 지도자가 사
실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날 만큼 교회에 가장 큰 상처가 되고, 하나님 나라
의 영광을 이루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나선 교회가 실제로는 하나님의 영광
이 드러나는 일에 가장 큰 거침이 되는 모순이 얼마든지 가능함을 보여주는 
모순된 현실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며 펼쳐지는 어떤 일들은 사실은 교
회의 본질을 회복하는데 결정적인 장애물이 되는 또 다른 형태의 교회 세속
화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기도 합니다. 교회지도자와 교회가 오히
려 교회의 교회됨에 결정적인 장애물이 되는 이러한 심각한 모순이 일어나
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도행전 11장 초두는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준 것은 복
음이 이방인에게도 이르렀으며, 이리하여 땅 끝을 향하여 진군하는 복음의 
역사에 또 하나의 획을 그었다고 인정되는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확장
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의 큰 기쁨이 될 만한 획기적인 사건
이었습니다. 베드로도가 예루살렘에 돌아오기 전에 이미 예루살렘에 그 소문
이 먼저 와 있는 것을 보아도 이 사건이 얼마나 중요한 사건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1절). 
그러나 이 소문을 들은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형제들은 이 위대한 사역을 마
치고 돌아오는 베드로가 문에 들어서자마자 베드로를 향하여 책망을 쏟아 붓
습니다(2절). “힐난했다”는 말은 단순한 질책이나 이의 제기가 아니라, 적
대감을 갖고 정죄의 의도로 비난하고 논쟁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땅 끝을 향하여 나아가야 할 복음 진군의 가장 큰 장애물은 다름 아
닌 이 사람들, 곧 복음을 땅 끝까지 가지고 가겠다고 나선 이 증인들이었던 
것임을 본문은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본문은 이들이 왜 베드로를 그렇게 힐난했는
지를 밝힘으로써 이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무섭게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그
들의 힐난은 왜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했는가, 왜 이방인들도 구원받게 
했는가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 “할례자로서 무할례자들과 먹었느냐?”
는 
것이었습니다(3절). 
결국, 복음의 진군에 인생을 걸겠다고 나선 복음의 증인들이 실제로는 복음 
진군의 결정적인 장애물로 전락하는 이 모순된 삶의 뿌리에는 자신의 전통, 
관습, 고정관념, 자신의 경험 등을 하나님의 일보다 더 우선순위에 놓는 사
고방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을 앞세워

한 마디로 요약하면, 모든 것을 자기 중심과 자기의 이익의 원리에 따라 행
하는 것이 이들의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 날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